"끝까지 그를 지지할 겁니다. 그에게서 희망을 봤기 때문입니다."
대만 총통 선거를 사흘 앞둔 10일 대만 수도 타이베이 총통부 인근 동우대 캠퍼스. 학교에서 만난 스모(27·대학원생)씨는 커원저 민중당 총통 후보에 대한 확신을 감추지 않았다. "기존 정당이 전쟁이니 평화니 싸우고 있지만 커원저는 먹고사는 문제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정치인"이라는 이유에서다.
13일 실시될 제16대 대만 총통 선거의 키는 대만 '2030 청년층' 손에 쥐어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청년층이 커 후보에게 '몰표'를 던져 약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만 현지에서 만난 민주진보당(민진당)과 국민당 관계자들조차 "현재 지지율 3위인 커원저가 득표율 2위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가디언은 "커 후보가 대만 정치 균형을 깨뜨릴 주체로 떠올랐다"며 "커 후보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과소평가돼 있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외과 의사 출신인 커 후보는 2014년부터 8년간 대만 수도 타이베이 시장을 지냈다. 2019년 민중당 창당 때만 해도 주목도는 낮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는 부동산 가격·물가 폭등·취업 문제 등 민생 문제에 집중한 결과 20~30대에서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 커 후보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110만 명으로,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17만 명)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9만 명)를 압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대만의 안철수'로도 불린다. 민진·국민 양당 구도 속 중도를 표방한 점, 이념보다 민생을 강조한 점, 청년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점이 비슷해서다. 의사 출신이라는 경력도 같다. 대만 신베이시 민중당 선거본부에서 만난 천스쉔 민중당 신베이시 시의원은 한국일보에 "이념에 젖어 있는 두 정당과 달리 커 후보는 의식주 문제에 집중했다"며 "젊은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게 커원저 돌풍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만 매체의 마지막 여론조사에 따르면, 커 후보는 라이 후보(32%)와 허우 후보(27%)에 이어 21%의 지지율로 3위를 기록했다. 2030 청년층은 전체 유권자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커 후보와 허우 후보 간 격차는 6%포인트다. 청년층 투표율이 80%를 넘어설 경우 득표율 2위도 전혀 불가능하진 않다는 게 대만 정치권 관측이다.
민중당 관계자는 "주로 낮시간 전화로 이뤄지는 여론조사에는 대만 MZ세대의 응답률이 낮은 경향이 있다"며 "실제 투표함을 열어보면 국민당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7일 커 후보의 가오슝 유세 현장에는 라이·허우 후보 유세에 못지않게 약 10만 명이 모여들었다.
마지막 변수는 지지자들의 변심 가능성이다. 투표 당일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 민진당이나 국민당에 표를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천 의원은 "선거를 코앞에 둔 지금도 커 후보 인기는 상승 중이다. 표심 분산이 아니라 결집세"라고 반박했다.
각 후보의 선거운동은 종반전으로 접어들었다. 라이 후보는 11일 타이베이시 총통부에서 "반드시 투표해달라"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허우 후보는 10일 타이난시 유세에서 "나와 마잉주 전 총통의 대(對)중국 노선은 다르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대만의 대표적 친(親)중국 인사인 마 전 총통이 독일 언론 인터뷰에서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을 믿어야 한다"고 밝힌 데 대한 반응이었다. 마 전 총통의 발언이 되레 대만 유권자의 반중 정서를 자극해 민진당으로 표심이 쏠릴 가능성이 커지자 재빠르게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됐다.
허우 후보는 12일 자신이 시장직을 맡고 있는 신베이시에서 선거 전야제를 벌여 텃밭 지키기에 나선다. 커 후보도 12일 총통부 앞에서 마지막 지지자 결집에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