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9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롯한 지도부를 만났다. 양측은 지난해 10월 7일 이후 세 달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한 중동 정세를 논의하고자 만났지만 의견이 다르다는 점만 확인했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 최소화', '전쟁 종료 후 팔레스타인에 가자지구 통치를 맡기는 방안' 등을 강조했지만 이스라엘은 전장에서 기세를 굽힐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란을 비롯한 반(反)이스라엘 세력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고 미국을 다그쳤다.
가자지구는 물론 중동의 평화는 더욱 아득해지게 됐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날 텔아비브에서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 이스라엘 카츠 외무부 장관 등 이스라엘 전시 내각 관료들과 연쇄 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회담 및 기자회견 등에서 나온 양측의 발언은 온도차가 났다.
미국은 '중동 긴장을 완화하자'는 쪽에 방점을 찍었다. 이스라엘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방지하고 민간 기반시설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TOI에 따르면 미국이 '민간 기반시설 공격을 자제하라'고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블링컨 장관은 또 "(전쟁 이후) 가자지구는 서안지구와 함께 팔레스타인 통치하에 놓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팔레스타인 온건파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지도자들이 전후 가자지구를 통치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인데, 이는 이스라엘이 반대하는 구상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중동 국가들의 급진화를 자극하고 있다", "가자지구로 인도주의 구호품이 더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등 각종 우려와 질타도 쏟아냈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쓴소리에 별다른 호응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마스는 물론 반이스라엘 세력에게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만 확인했을 뿐이다.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 지도자들이 발견되고 인질이 석방될 때까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등에서의 작전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바논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의 위협을 거론하면서는 "전선 확대를 막고 싶다면 미국이 이란을 더 압박하라"고도 요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블링컨 장관과의 만남에 대해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TOI 등은 이를 두고 "불협화음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스라엘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중동 정세 안정'이라는 블링컨 장관 중동 순방 목표도 달성이 요원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카타르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이 이스라엘을 방문한 날에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따라 이스라엘·헤즈볼라 교전이 이어졌고, 온종일 공습경보가 울렸다.
다만 이스라엘은 미국 요청에 따라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관련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북부로 유엔 대표단을 들여보내 기반시설 상태를 평가하도록 결정한 게 준비 작업의 일환이라고 이스라엘 예루살렘포스트는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