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차 변호사 때 신문에 나오는 주가조작 사건을 변론한 적이 있다. 선배 변호사님이 재판을 이끌었지만,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을 접견하면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서면 초안을 작성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주식이라고는 1주도 사본 적이 없었는데 주가조작 사건을 맡게 되니,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피고인에게 질문을 많이 했고, '변호사님은 이런 것도 모르시냐'는 핀잔을 들으며 피고인과 같이 증거기록을 검토했다.
사건은 공소사실 중 일부에 대해 무죄를 다투는 것이 핵심이었고, 일부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변론을 진행하며 의문으로 남은 것이 하나 있었다.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법원에는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을 하고 돌아간 사채업자들, 즉 '전주(錢主)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빌려준 돈이 주가조작에 이용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증거기록에 편철된 여러 증거들을 보면 검찰은 전주들도 의심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더 나아가 수사하지 않았고, 당연히 기소도 하지 않았다. 주가조작을 직접 실행한 사람들을 수사하기에도 바빴을 것이고, 고의 입증이 쉽지 않은 전주들에게까지 수사를 확대하는 것은 불필요한 수사력 낭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달 28일, '김건희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대통령은 이번달 5일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2010년 전후 벌어진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의 주가조작 사건에 김 여사가 가담했는지 여부를 특검을 통해 규명하는 게 핵심이다. 권 전 회장 등에 대한 1심 판결문에는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다는 사실이 적시됐다.
그런데 주가조작에 계좌가 동원됐다는 사실만으로 주가조작 사실을 인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통정·가장매매나 현실거래에 의한 주가조작은 특정주식의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인위적으로 대량 매수세를 형성해 주가부양을 하는 것이므로 일차적으로 주식거래를 할 돈과 계좌가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가조작세력에게 돈과 계좌를 제공한 사람을 모두 전주라고 한다면, 어떤 경위로 돈과 계좌를 제공했고, 이후 주식거래에 어떻게 관여했는지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주들이 존재하게 된다.
예컨대 (1) 증권사 직원이 주가조작세력의 의뢰를 받고 고객에게 위탁받은 계좌를 이용해 시세조종 주문을 다수 제출한 경우, (2) 주가조작세력의 지인 또는 가족이 이른바 작전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여기에 편승하여 시세차익을 얻을 의도로 직접 주식을 매집하거나 돈과 계좌를 제공한 경우, (3) 주가조작세력과 직접 의사연락을 하면서 통정·가장매매나 현실거래에 일부 개입한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전주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나는 주가조작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강력하게 부인한다면, 머릿속을 투시하여 '고의'라는 물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고의와 관련성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입증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14회 칼럼에서 검사 재량권에 내재한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수사를 더 하면 기소할 수 있는 사건도 수사를 더 하지 않을 수 있는 재량이 검사에게 있다. 그것이 경험 부족, 수사력 부족 또는 업무량 과다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밖에서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국민들의 관심이 특검법에 쏠리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