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씨를 견디기 위해 부담되더라도 도시가스 요금 모두 내시고 계실 겁니다. 이 요금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등의 인건비도 포함되지요. 그런데 2년 전 서울에서 안전점검원의 임금을 중간 위탁업체(고객센터)가 떼어간다는 주장이 제기됐었죠. 서울시가 매년 임금을 산정하고, 도시가스 사업자는 서울시 기준에 맞춰 임금을 보내지만 위탁업체가 임금을 다 주지 않고 중간착취를 한다는 것이지요.
당시 서울시는 산업통상자원부에 건의해서 규정을 바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해결됐을까요?
확인 결과, 아무것도 변한 것 없이 노동자들은 계속 피해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서울시가 할 수 있는데 책임을 산업부로 떠밀며 면피만 하고 있다”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살펴봤습니다.
2022년 7월 서울시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이 소속된 고객센터가 임금 중간착취를 하는지 점검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에 대해 기자가 정보공개 청구를 했더니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이 답신을 보고 서울시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해서 물어봤습니다.
-(안전점검원들이 일하는) 고객센터가 65개 아닌가.
“맞다, 센터가 65개다.”
-그중 세 군데 조사는 샘플이 너무 적은 것 아닌가. 또 장부상 기재해 놓은 임금 지급 내역이 실제로 노동자에게 갔는지 확인된 건가.
“그것까지는 제가 답변드릴 수가 없다. 그때 제가 담당이 아니었다.”
서울도시가스 안전점검원 노조 관계자(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서울지역은 서울도시가스, 예스코 등 5개 회사가 도시가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당시 임금타결이 안 된 3개 고객센터가 조사대상이었습니다.
-서울시가 3개 센터를 조사했더니 중간착취나 인건비 미지급이 드러나지 않았다는데.
“그 조사는 총액만 보는거다. 개인한테 임금이 제대로 지급됐는지는 관심이 없는 거다.”
-조사한 회계법인에서 노동자들에게 확인하러 온 게 전혀 없었나.
“없었다. 저희가 2021년인가 2022년에 개인 근로계약서에 계약된 것을 봤다. 전체는 아니지만 다른 고객센터들 것도 봤다. 많게는 (서울시에서 내려보낸 산정임금과 비교하면) 한 사람당 1년에 500만~600만 원 정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임금협상은 타결됐나.
“2021년부터 지금까지 타결을 못 하고 있다. 여전히 세전 203만8,000원(기본급)하고 교통비와 식대 합쳐서 19만 원 받고 있다. 임금소멸 시효가 3년이라 얼마 전에 일단 (임금 타결한) 나머지 직원들에게 지급한 만큼만이라도 요구해서 정산받은 것은 있다. 저희 요구는 서울시가 산정한 임금을 (중간착취 없이) 그대로 달라는 거다.”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은 도시가스 사업자들이 위탁한 고객센터 소속입니다. 서울시 입장에서 보면 2차 하청 노동자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시는 자신들이 직접 안전점검원들의 임금을 살펴볼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지요. 그리고 1차 하청(도시가스사업자)이 2차 하청(고객센터)의 임금집행 내역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산업부의 규정을 보강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서울시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더니 이런 답변이 왔습니다.
서울시 관계자에게 더 자세하게 물어봤습니다.
-산업부에게 정확히 무엇을 바꿔 달라고 한 것인가.
“산업부의 ‘도시가스회사 공급비용 산정기준’에는 ‘도시가스회사는 시도지사가 정한 지급수수료(인건비 등) 전액을 고객센터에 지급한다’고만 돼 있다. 저희가 건의한 내용은 ‘집행한 결과를 정산한다’고 추가해 달라는 거다. 도시가스회사가 센터에서 쓴 집행내용을 확인하라는 거다.”
-산업부에서 사경제 영역이라 안 된다고 답변했다는 건가.
“공식 답변이 온 건 아니다. 제가 당시 담당자는 아니었는데 그때 자료를 찾아보고, 전임자에게 물어봤을 때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한 것 같아서 정보공개에 써놓은 것이다.”
-산업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뜻인가.
“제가 섣불리 답변드릴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산업부가 무책임하게 이 건을 뭉개고 있는 것일까요. 산업부의 입장은 아주 달랐습니다. 산업부 관계자와의 질의응답 내용입니다.
-‘공급비용 산정기준’에 ‘정산한다’ 문구를 넣어달라고 했다는데, 왜 안 되고 있나.
“저희도 참 답답한 게, 서울시에서 풀 수 있는데 회피하고 산업부로 넘긴 것이다. 도시가스사업법이라든지 모든 법리 흐름이 서울시가 고객센터 회계를 볼 수 있다. 도시가스 요금을 받아서 지급을 해주는 건데, 회계를 볼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다. 결국 서울시가 하기 싫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허가권자로서 직접 다이렉트 제어를 할 수 없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위의 도시가스사업법 조항을 제시했습니다. 도시가스법에 지자체장의 허가와 공급규정 승인 권한이 있고, 그 안에 실질적으로 도시가스회사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담겨 있어서 서울시가 직접 고객센터의 운영내역을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지요.
그래도 추가로 물어봤습니다.
-산업부의 ‘공급비용 산정기준’에 서울시 건의대로 ‘정산한다’는 문구 하나 넣으면 더 명확해지는 것 아닌가.
“이해 관계자들에게서 하도급법 위배 우려가 있다는 법리적인 검토 의견을 받았다. (서울시 건의는) 도시가스사에 ‘너희들이 하청 자료까지 다 받아가지고 정산하라’고 하는 것인데, (민간업체인) 도시가스사들이 하청 기업 회계까지 들여다볼 수 없다. 현행 더 큰 법리로 보면 그렇다. 삼성전자가 하청업체 회계나 정산서류를 가져와서 기관에 낼 수 없지 않나. 서울시가 다이렉트로 고객센터에 정상적으로 들어가서(개입해서) 본인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면 된다.”
통화가 끝난 후에도 이 산업부 관계자는 답답했는지 기자에게 전화해서 추가 설명을 했습니다.
“지자체 ‘도시가스 공급규정’에 도시가스회사의 ‘공급비용 산정은 산업부 산정 기준을 따른다’고 돼 있다. 그 의미는 뭐냐면, 도시가스 산업 초기에 전국적으로 일원화할 필요도 있고 지자체 역량이 안 되니 산업부가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내려준 기준이지, 어떤 법적인 효력을 갖는 기준이 전혀 아니다. 편의상 지자체가 매번 고쳐서 넣기 그러니까, 편하게 산업부 산정 기준을 따르는 거다. 서울시가 본인들 재량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렇게 넣어놓고는 산업부가 이걸 안 고쳐주기 때문에 우리가 행정을 못 한다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시도지사가 산정 기준을 별도로 만들 수가 있는데도 산업부 기준을 가져다 넣은 거라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 기준이 어떤 법적 효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막말로 안 따라도 된다. ‘산업부가 안 고쳐주기 때문에 우린 못 해요’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다만 현실을 인정해서 오랜 기간 그렇게 해왔으니, 필요하고 타당하면 저희가 그 기준을 고칠 수 있다. 그러려면 서울시가 도시가스사나 고객센터와 합의를 본 문구라든지, 아니면 다른 법에 위반되지 않는 문구를 가지고 와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님이나 국회에다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했는데 산업부가 안 들어준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서울시 고시(공급규정)에다가 넣어도 되는 거겠네.
“그렇다.”
용역·파견 노동자들이 중간에서 임금을 떼이지 않도록 원청이 임금을 전용계좌로 지급하게 하는 ‘중간착취 방지법’이 도입되면, 사실 이 문제도 바로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회가 관심이 없으니 분야별로 먼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해결해야 하는 거죠.
서울시가 도시가스사업법이 규정한 허가·승인권자로서 고객센터의 임금 중간착취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를 바라봅니다. 서울시뿐 아니라 모든 지자체들이 마찬가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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