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겁이 나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피란민이 된 아야 크라이스(26)는 만삭의 임신부다.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치과의사로 일했던 크라이스는 개전 후 5번이나 거처를 옮겼다. 때로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몇 ㎞씩을 걷기도 했다. 가자 남부의 친척 집에선 열한 가구 74명과 함께 지냈다. 물과 음식, 의약품, 전기는 늘 부족했고, 기본 위생을 지키기도 어려웠다. 산전 관리는커녕 산부인과 진료조차 힘든 현실. 이제 배는 남산만 해졌는데 몸무게는 그대로다. 지난달 산부인과 의사는 "양수가 과다하니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수술을 할 돈도, 회복할 안식처도 없다.
미국 하버드 의대 조교수를 지낸 산부인과 전문의 앨리스 로스차일드가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전한 전쟁의 참상이다. 로스차일드는 "비극의 정점엔 어린이와 여성이 있다"고 짚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가자지구엔 약 5만 명의 임신부가 있었다. 석 달이 갓 지난 지금까지, 전쟁통에도 하루 평균 180명의 신생아가 태어났다. 새 생명이 빛을 보는 사이, 9,000명의 어린이가 스러졌다.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추산한 개전 후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최소 2만2,835명)의 약 40%가 아동이라는 얘기다. 여성도 5,300명 이상 숨졌다.
언제나 그렇듯,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이번에도 어린이와 여성이다. 특히 가장 취약한 상태인 임산부와 신생아는 산전·산후나 소아과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한다. 가자지구의 산모들 중 15%는 합병증을 겪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응급 치료는 언감생심이다.
산모 사망의 주요 원인인 출혈이나 감염, 고혈압 등 합병증 예방·관리는 가자지구에선 사치다. 수많은 여성이 차 안이나 길거리, 과밀한 대피소에서 아이를 낳는다. 국제구호단체 케어(CARE)는 "마취 없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거나 출산 후 3시간 만에 퇴원하는 여성도 많다"고 밝혔다.
게다가 임산부 대다수는 식량 부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로스차일드는 NYT에 "영양실조는 그 자체로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며 "영양이 부족한 임산부는 출혈, 빈혈뿐 아니라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전쟁 트라우마도 임산부·신생아의 건강을 위협한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코소보 등 무력 분쟁 지역에서 전쟁을 겪은 여성의 경우 △유산 △사산 △조산 △선천적 기형 △산모 사망률 등이 증가했다는 연구 논문이 2017년 'BMJ 글로벌헬스'에 발표된 바 있다. 2014년 가자지구 분쟁 당시 태어난 아기는 감각 운동이나 인지·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이스라엘의 오랜 봉쇄로 의약품과 의료장비 등 반입이 제한된 탓에 전쟁 이전에도 가자지구 유아 사망률이 이스라엘의 7배에 달했다고 밝혔다.
로스차일드는 "(임산부와 어린이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당장 전투가 멈추고 의료 서비스가 복구·재건되는 것인데,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망도 어두워진다"며 "전쟁이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무력 충돌이 격화하면서 전장은 오히려 가자지구 바깥으로도 넓어지는 분위기다. 영국 가디언은 "레바논 남부에서도 주민 수만 명이 피란 행렬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