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에게 권하는 새해 다짐

입력
2024.01.09 04:30
26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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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0년 전 ‘담배와의 전쟁’을 벌였다. 폐암 등 흡연 때문에 생긴 병에 건강보험공단이 쓴 진료비를 배상하라며 담배회사에 500억 원대 소송을 걸었고, 오랜 흡연으로 훼손된 신체를 담은 ‘경고그림’을 담뱃갑에 붙였다. 담배회사들이 반발했지만 정부의 논리는 간결했다. 국민 건강 증진과 청소년 보호. 특히 청소년들에게 담배의 폐해를 알려 중독물질에 함부로 손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했다. 담뱃값 인상, 식당 전면 금연 등이 더해지며 흡연자들의 입지는 빠르게 줄었고, 그 자리에는 ‘담배는 각종 암을 유발하며, 아무 데서나 피우면 안 된다’는 상식이 자리 잡았다.

당시 정부의 금연 정책을 취재하며 나는 친구의 상사를 떠올렸다. 친구는 2010년대 초반 어렵게 들어간 방송사를 그만뒀다. 퇴사 이유 중 하나는 상사의 사무실 흡연. 매일 줄담배 연기를 맡으며 임신을 준비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젠 그 상사도 나가서 피우겠지, 어쩐지 씁쓸했다.

오래전 일을 곱씹게 된 건 최근 미디어의 음주 방송을 취재하면서다. 술은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한 1군 발암물질. 하지만 담배에 불호령을 내렸던 정부가 술에는 그림자도 안 비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술에 관한 한 ‘무정부 상태’나 마찬가지다. 영국·핀란드는 밤에 술 판매를 막고, 프랑스·스웨덴은 TV·라디오에서 술 광고를 금지한다. 공원 등 공공장소 음주가 불법인 나라, 마트 가장 구석진 곳에 술을 진열해야 하는 나라, 술 광고 모델조차 술 마시는 장면은 찍을 수 없는 나라들도 많다. 술 포장, 진열, 광고에 대한 세세한 규제의 목표는 ‘술 노출 최소화’와 ‘음주 미화 방지’. 이 두 가지가 국민, 특히 청소년 음주를 예방하기 때문이다.

담배 규제가 선진국의 발자취를 따라간 것이었듯, 술 역시 참고할 사례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상파 방송조차 연예인 음주 장면을 내보내고, 정부는 제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지난해부터 음주 규제가 거의 없는 유튜브에서 가수 이영지, 성시경 등 유명 연예인들이 술 방송을 시작했다. 연예인들은 술을 예찬하고 주량을 자랑하며, 폭탄주를 만들어 ‘원샷’을 한 후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방송인 신동엽도 지난해 9월 가세했다. 그는 기존 술 방송 문법에 ‘만취’ 콘셉트를 더해 쉴 새 없이 술잔을 비운다. 술을 못 마시는 연예인에게도 계속 술을 권하고, 술주정을 해도 말리기는커녕 웃기 바쁘다. 그는 늘 만취해 매니저의 부축을 받아 귀가한다. ‘대마초보다 중독성이 강한 발암물질’ 술은 없다. 흥을 돋우고 재미를 보장하는 ‘맛있는 만능키’ 술만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청소년과 젊은 여성의 음주·폭음 증가가 이런 방송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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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가’ 신동엽의 새해 다짐에 금주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다만 이건 어떨까. 정부가 담배를 규제하기 전에도 타인을 배려해 장소를 가려 피우던 흡연자들은 많았다. 직장을 포기한 친구의 상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술과 관련해 아직 정부의 규제도, 아무 데서나 마시면 안 된다는 상식도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때와 장소를 가려 마시는 애주가도 많다. 청소년들이 롤모델로 삼는 연예인, 연예대상을 두 차례(2021·2022년)나 받을 만큼 두루 사랑받는 신동엽이 서야 할 자리도 그곳이 아닐까. 카메라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다짐, 어떤가.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