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의 '정보 교환 카르텔'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이들 은행이 담보인정비율(LTV) 관련 정보를 주고받아 LTV 인상을 제한했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가 담합 행위로 정보 교환 카르텔을 겨눈 것은 2021년 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공정위는 8일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은행에 담합 혐의로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 격)를 발송했다. 공정위가 적용한 혐의는 '정보 교환 부당공동행위'로,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시했다. 과징금 규모는 공정위 전원회의 심판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담보 대출이 은행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건 4대 은행 간 LTV 자료 공유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모든 수단을 열어놓고 통신‧금융사의 과도한 지대 추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라"는 윤석열 대통령 지시 이후 6대 은행에 대해 예금, 대출금리 등 은행 업무 전반을 조사했다. 이어 6월에는 LTV로 좁혀 은행 간 담합 행위를 조사했고, 은행끼리 민감한 LTV 자료를 교환한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LTV는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대출 가능한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아파트·오피스텔·토지 등 부동산 종류와 각 시·군·구별로 LTV를 다르게 매겨, 은행별 LTV는 6,000~7,500여 개에 달한다. 국민은행은 1년에 두 번, 신한·우리·하나은행은 1년에 한 번 지역과 부동산 종류별로 LTV를 설정하는데, 공정위는 은행들이 이때마다 자료를 공유해 LTV 비율을 서로 조정했다고 봤다.
예컨대 특정 오피스텔에 사는 A씨가 오피스텔을 담보로 국민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경우, 국민은행은 신한, 우리, 하나은행의 LTV 정보를 토대로 비율을 정했다는 것이다. 은행별 알고리즘이 아닌, 다른 경쟁 은행의 LTV 정보를 엑셀파일에 정리한 뒤 변수로 활용해 비율을 조정한 셈이다. 공정위는 이 지점이 '정보 교환 카르텔'에 해당한다고 봤다. 정보 교환을 합의하고, 교환한 결과 서로 알기 어려운 비공개 정보를 공유해 결과적으로 경쟁을 억눌렀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런 정보 교환 카르텔이 소비자의 대출 문턱을 높이는 결과로 작용했다고 봤다. 4대 은행이 서로의 LTV 정보를 몰랐다면 경쟁적으로 LTV 기준을 높여 소비자가 더 많은 대출을 받았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NH농협 등 다른 은행과 비교하면 4대 은행의 LTV는 소폭 낮게 설정됐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은행들은 "정보 교환이 LTV 지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보 교환은 인정하되, 이로 인한 실질 이익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업무 진행 과정에서 참고하는 정보 공유일 뿐, 담합이 아니다"며 "대출 조건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점을 적극 소명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