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선거의 해’를 맞은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실시된 방글라데시 총선이 예상대로 집권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시아판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셰이크 하시나(76) 총리는 4연임이자 5선에 성공하며 ‘세계 최장수 여성 정부 수반’ 타이틀을 유지하게 됐다. 다만 투표율이 50%에도 못 미친 상처뿐인 승리인 데다, 야권도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은 위험 요소다. 방글라데시가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8일 방글라데시 다카트리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비공식 집계 결과 여당 아와미연맹(AL)이 전체 299석 중 최소 223석을 차지했다. 무려 74.5%의 의석을 거머쥔 셈이다. 이로써 1996년 첫 집권에 성공한 뒤 2009년과 2014년, 2019년 세 차례 연임한 하시나 총리는 향후 5년간 더 권좌를 지키게 됐다.
하시나 총리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만(1920~1975)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의 딸이다. 부친의 후광을 등에 업은 그는 20년 이상 집권을 통해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를 남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로 탈바꿈시켰고 빈곤 인구도 줄였지만, 철권 통치로 인권과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는 비판도 비등하다.
특히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대대적인 야권 탄압에 나섰다. 제1 야당인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과 군소 정당은 지난해 하시나 내각 사퇴와 중립 정부 구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는데, 이를 유혈 진압하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지난해 10월 이후 야당 지도자와 당원 16명이 숨지고 최소 1만 명이 체포됐다면서 “정부가 교도소를 여당의 정적들로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시나 총리가 이번 총선 승리를 계기로 야권 탄압의 고삐를 더 바짝 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 사실상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하시나 총리와 집권당은 ‘반쪽짜리 정부’ 비판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방글라데시 선거관리위원회가 밝힌 이번 선거 투표율은 약 40%다. 2018년 총선(80.2%)의 절반 수준이다. 야당이 선거 보이콧을 선언하며 대규모 투표 거부 운동에 나선 결과다. 압도적인 승리에도 불구, 정당성엔 물음표가 붙은 셈이다.
게다가 이런 투표율조차 부풀려진 것이라는 의혹마저 나온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선관위는 투표 종료 직후 전국 평균 약 2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지만, 곧이어 40%로 정정했다”고 전했다. 선거 당일 투표소 곳곳에선 투표 조작 논란도 불거졌다.
부정선거 논란 탓에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당장 야당은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압둘 모옌 칸 BNP 대표는 “국민이 투표소에 가지 않음으로써 현 정부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선거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정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