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등 수많은 명사가 묻힌 프랑스 파리 20구 페르 라셰즈 공원묘지는 관광지 같은 명소다. 제2제정기 무명 기자였다가 하루아침에 반(反)제정의 영웅으로 부상한 빅토르 누아(Victor Noir, 1848~1870)의 묘도 거기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샤를 루이는 1848년 2월혁명 직후 공화정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단임 헌법 개정에 실패하자 친위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한 뒤 제정을 선포하며 제2제정 황제가 된 인물이다. 경제 호황 덕에 그의 치세는 대체로 무난했지만 1860년대 이후 불황이 시작되면서 지지도도 추락했다. 그는 국가 폭력으로 반발을 짓누르다 1871년 보불전쟁에 패배하면서 강제 폐위당했고 피난처 영국에서 숨졌다.
숨졌던 당시 누아는 개혁 성향 매체 ‘라 레방쉬(La Revanche)’의 신입 기자였다. 제정에 비판적이었던 매체가 나폴레옹 1세를 비판하는 기사를 집중 보도하자 나폴레옹 3세의 조카 피에르 왕자가 1870년 1월 9일 ‘가문의 명예’를 건 결투를 신청했다. 그 결투에 응하기로 한 당시 편집장은 이틀 뒤 결투 시간과 장소를 협의하기 위해 누아 등 직원 2명을 보냈다. 귀족인 사주가 아닌 ‘천한 피고용인’이 나선 데 분노한 피에르는 심부름꾼인 누아를 권총으로 사살했고, 법원은 피에르의 무죄를 선고했다.
누아의 죽음은 반(反)제정의 상징적 사건으로 부각됐고, 장례식에는 공화파 시민 10만여 명이 참석했다. 고향에 묻혔던 그의 시신은 제3공화정 출범 후 페르 라셰즈로 이장됐고, 쓰러진 모습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상이 무덤 위에 설치됐다. 그 조각상이 페르 라셰즈의 ‘명물’이 된 건 성기 등 특정 부위가 관광객들의 손길에 청동 색조를 잃고 광택이 나면서부터다. 거길 만지면 출산을, 입술에 키스하면 연인을 만나게 된다는 헛된 전설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