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주권과 독립의 상징

입력
2024.01.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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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파나마 순교자의 날- 2

파나마 운하지대는 미국인의 땅이고 선민의 땅이었다. 파나마인은 운하지대를 오갈 수는 있어도 상점조차 이용할 수 없었고, 공공기관과 학교에는 성조기만 게양됐다. 1963년 1월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운하지대 내 비군사적 장소에는 양국 국기를 함께 게양하기로 파나마 정부와 합의했다. 그 협상은 케네디 암살로 실현되지 못했고, 운하지대 미국인 총독은 분란의 소지를 없앤다는 취지로 학교 등 민간 시설에 한해 성조기 게양을 금지했다.

운하지대 미국인 공립학교였던 발보아고교 학생들이 그 결정에 반발, 미국인 주민들의 절대적인 응원 속에 성조기를 게양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인근 파나마 공립고교생 200여 명이 현장으로 몰려갔다. 지역 경찰은 파나마 학생 대표단 6명만 학교로 진입해 파나마 국기를 나란히 게양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인 시민과 학생들은 ‘주권 침해’라며 반발했고 양측 학생들이 몸싸움을 벌이던 과정에서 파나마 국기가 찢겼다.

‘국기 모독’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미 시위가 파나마 전역으로 확산되자 미국 측은 군대를 투입했다. 사흘간의 무력 충돌로 총 28명이 숨지고 다수가 부상당했다. 미국인 사망자는 군인 3명 포함 4명이었다. 파나마 대통령(Roberto F. Chiari)은 자국 영토에서 외국 군대에 의해 자국민 다수가 숨진 사태를 준침략행위로 규정하고, 미국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유럽 등 국제사회도 미국의 부도덕한 약탈-반인권 행위를 비난했다. 양국은 긴 협상 끝에 1979년까지 운하지대를 해체하고 미군 기지를 폐쇄한다는 새 조약을 77년 체결했다. 운하 통제권은 1999년 12월 31일에야 파나마 정부로 완전 이양됐다.

저항의 진원지인 발보아교교는 운하관리청 소속 ‘순교자 기념관’으로 바뀌었고, 1월 9일은 파나마의 반미 희생자 애도 국가 기념일(순교자의 날)이 됐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