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6일 제주지법 법정. 변진환(51) 검사가 피고인을 향해 갑자기 제주 방언으로 말을 건넸다. 변 검사의 말은 이런 뜻이었다. "할머니, 잘못한 것 없습니다. 사람들이 막 데려가서 거꾸로 매달고, 고생 많았습니다. 이젠 걱정 마세요."
피고인석엔 제주4·3사건 재심을 받는 박화춘(95) 할머니가 있었다. 1948년 서귀포 강정리에서 영문 모른 채 끌려가 느닷없이 내란범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다. 제주 출신 변 검사가 제주 사투리로 박 할머니에게 공감을 표시하며 무죄를 구형했고, 할머니의 변호인도 죄가 없음을 주장했다. 당연히 재판부 결론도 무죄. 21세 방년 박화춘이 할망이 되어 74년 만에 누명을 벗은 순간이었다.
재심(再審). 이미 확정된 판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제도다. 제주지법 4·3재심재판정에선 2022년 3월부터 특별한 재심이 열린다. 여기선 판사도, 검사도, 변호인도 주인공이 아니다. 한 재판마다 30명 남짓씩 등장하는 피고인(또는 유족)들이 오롯한 관심의 대상이다. 칠십여 년만에 자신이 겪은 피해를 증언하거나, 고인이 된 피해자를 대신한 유족이 나와 "아버지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다"며 울부짖는다. '피고인석' 명패도 없다. 긴 시간 속솜해야(쉬쉬해야)했던 피해자들을 위한 법원의 배려다.
검찰은 이 재심을 위해 전담 조직을 뒀다. 2021년 2월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제주4·3위원회가 법무부 장관에게 군법회의(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 청구를 권고할 수 있게 됐다. 그해 11월 위원회는 군법회의 수형인 2,530명에 대한 직권재심 청구를 권고했고, 검찰은 곧장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수단)을 꾸렸다.
이제관(59) 단장을 포함해 검사 세 명, 수사관 두 명, 실무관 한 명, 파견 경찰관 두 명까지 총 8명이 투입됐다. 서울중앙지검에 있던 변진환 검사도 합수단에 합류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그가 검사 임관 12년 만에 처음 하는 고향 근무였다.
한국일보는 지난달 27일 변 검사를 만나, 그의 합수단 재직 1년 10개월을 짚어가며 4·3사건 재심 과정을 함께 살폈다. 지난해 9월 정기 검사인사에서 수원지검 안산지청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변 검사는 1,111명의 무죄 선고를 이끌었다. 그는 "4·3영령들이 나를 점지해서 보낸 거 같았다"는 소회를 밝히며 "국가가 잘못한 일을 국가가 바로 잡는 보람찬 일이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첫발 떼기가 제일 어려웠다. 변 검사는 제주 출신이었지만, 그의 학창 시절 제주에서 '4·3'은 금기어였고, 그 역시나 사건을 어렴풋이 아는 게 전부였다. "제주도 사람인데도 제대로 몰라서 부끄러웠어요. 곧장 620쪽짜리 4·3진상보고서를 휴대폰에 저장하고 합수단 근무 직전까지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정독했죠." 고향에서 일어난 비극을 되짚는 일인지라 큰 사명감이 생겼다. 흔치 않은 재심 업무를 익히기 위해 광주지검의 5·18, 순천지청의 여순사건 재심 기록도 찾아 공부했다.
합수단 근무 첫 두 달은 기록과의 지난한 싸움이었다. 직권재심 대상자를 가리기 위한 피해자 신분 특정이 가장 중요해서다. 변 검사는 제주4·3평화재단과 연구소를 직접 찾아 70여년 전 자료를 받아온 뒤로부턴 '해독' 작업에 몰두했다. 합수단이 직권재심 대상인 군법회의 피고인 특정을 위해 분석해야 한 자료는 ①군법회의 수형인 명부 ②형사사건부 ③수용자 신분장 ④재소인명부 4가지였다.
문제는 모두 1940~1950년대 작성된 자료라는 것. 모든 글자가 한자였고, 활자도 아닌 흘림체 붓글씨였다. 천운이 이어준 것인지 변 검사는 한자박사였다. "부친이 서예가이자 한문 선생님이셨어요. 어릴 적부터 부친 영향으로 붓으로 쓴 한자에 친숙해서 해석엔 수월했죠."
한자의 산을 넘으니, 또 다른 산이 나왔다. 네 기록들에 담긴 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중구난방이었다. 가령 군법회의에서 작성된 수형인 명부엔 피고인의 직업, 이름, 나이, 본적만 적혀 있다. 생년월일도 없다. 반면에 수용자 신분장엔 생년월일 뿐 아니라 죄명이나 가족관계도 나온다. 이걸 일일이 꿰맞춰야 했다. "제주도청에서 받은 희생자 명부에 올라간 건 강OO씨인데, 수형인 명부엔 현OO씨로 돼 있는 경우도 있죠. 그럼 다른 자료들을 보고, '강씨'로 특정하는 거죠." 4·3사건 기록 중에는 가족·친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이렇게 본적이나 성(姓)을 허위로 기재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피해자를 특정하면, 피해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 방언의 장벽을 다시 넘어야 한다. 생존 피해자는 물론 사망 피해자의 유족조차 이미 고령이어서 사투리가 익숙하기 때문이다. 변 검사는 뭍에서 건너온 다른 합수단원들을 위해 사투리 강의에 나섰다. "단장님부터 육지 사람이었기 때문에, 초반엔 일부러 업무를 하면서도 사투리를 써서 익숙해지게 도왔어요. 경하고예(그렇고요) 정하고예(저렇고요) 하면서."
그렇게 2022년 2월 합수단 설치 두 달여 만에 처음 직권재심을 청구했다. 제출 자료만 2,500여 쪽에 달했다. 그리고 3월 29일, 제주지법 형사4-1부(부장 장찬수) 심리로 첫 선고가 이뤄졌다. 변 검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구형했다. "수십년간 희생자들은 통한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유족 등의 진술을 보면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군경에 연행돼 처벌을 받았습니다. 증거도 전혀 없습니다. 피고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해 주십시오."
재판장은 선고 직전 유족에게 발언 기회를 부여했고, 법정은 눈물바다가 됐다. "갓난쟁이 때 헤어진 아버지 얼굴 조차 모른다"며 통곡하고, 형무소 신분장에 붙은 사진이라도 달라는 유족도 있었다. 변 검사는 "직권재심을 하면서 사실 제일 어려웠던 건 공판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40여 차례의 직권재심을 거치는 동안, 유족 여럿은 합수단에 감사를 표했다. 그중 변 검사에게 "무죄 판결문 식계상에 올리쿠다예(제사상에 올릴게요)"라고 전화한 피해자의 아들도 있었다. 반대로 유족에게 고개를 숙였던 적도 많다. "재판을 해왔는데 몇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죄송하고 슬퍼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했으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죠."
유죄를 입증하던 검사가 무죄를 구형하는 일을 한 소회를 묻자, 변 검사는 '형사소송법' 책의 한 구절을 읊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객관의무가 있어, 피고인에 불리한 증거만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하는 의무도 있습니다." 두 손을 맞잡은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3일 기준 합수단이 직권으로 청구한 재심에서 수형인 1,240명이 무죄선고를 받았다. 2022년 8월부터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일반재판 수형인까지 직권재심 대상에 포함되면서, 재심 청구 대상은 2,000명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제주지검에서 맡아 온 일반재판 수형인의 명예회복을 합수단이 넘겨받아 진행 중이다. 군법회의 수형인(2,530명)과 일반재판 수형인(1,800여 명 추정) 수를 고려하면, 군법회의는 이제 반환점을 돈 수준이고, 일반재판은 한참 남았다.
변 검사는 "제주4·3 재심은 어떤 재심 사건 보다도 신속함이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대상자도, 유족도 고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합수단 인원이 한 자리 수(9명)라 혼을 갈아 넣어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2월 합수단엔 검찰 수사관 1명이 증원됐지만, 검경 인력 외엔 다른 관계부처 파견 지원은 없는 상황이다. 제주도청도 기록 발굴을 물심양면 돕긴 하지만, 따로 인력을 파견하진 않았다. 지난해 3월 제주를 찾은 이원석 검찰총장은 합수단 인력 부족 지적에 "검사장들과도 협의를 하고 있지만 지자체와 타 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힘을 보탰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