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거장에 1시간 반"… 명동·남대문이 빨간버스로 포위된 사연은?

입력
2024.0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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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정차 광역버스 노선 29개 늘어
지난달 말 세운 안내판이 체증 유발
버스 줄줄이 엉키며 시민 불만 폭주 
市 "대기판 유예 및 일부 노선 조정"

경기 용인에서 서울 을지로입구역 인근 명동으로 주 5일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23)씨는 요즘 퇴근길이 '고행길'이 됐다. 광역버스 4101번을 타고 집까지 1시간 15분 걸리던 퇴근시간이 2시간 안팎으로 크게 늘어서다. 명동입구 정류소에 버스가 정차하고, 시민들이 대기하는 장소임을 알리는 노선별 표지판이 얼마 전 설치된 뒤 벌어진 일이다. 김씨는 "수많은 버스가 자기 자리를 찾아 정차하고, 손님을 더 태우려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 그 뒤로 버스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며 "정체가 극심해져 표지판이 없을 때보다 대기 시간이 보통 30, 4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늘었다"고 토로했다.

서울역~명동 '열차현상'

5일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서울시가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소(남대문세무서·서울백병원 방면) 인도에 혼잡 완화와 안전을 위해 지난달 28일 설치한 노선표시 시설물 때문에 오히려 퇴근길 정체가 극심해졌다. "버스로 서울역에서 명동까지 두 정거장(1.8㎞)을 가는 데 1시간 반이 걸렸다"는 사연까지 알려졌다. '퇴근길 지옥이 따로 없다'는 불만이 폭주하자 시는 뒤늦게 '대기판' 시행을 취소했다.

이 정류소는 평소에도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수많은 노선이 정차하고, 일일 탑승객이 약 9,500명에 달하는 반면 정류소 길이는 35m 정도에 불과해서다. 퇴근시간대에는 버스가 여러 대 줄줄이 늘어서거나 뒤엉켜 시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소와 동떨어진 곳까지 달음박칠을 치는 일도 다반사였다.

여기에 최근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가 추진한 M버스 도심 진입 확대·광역버스 입석 금지 대책 등으로 명동입구에 정차하는 광역버스 노선이 29개로 급증하자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는 판단에 시가 나름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정류소 바닥에 일부 운수회사의 노선번호만 표기돼 탑승객들이 확인하기 어렵고, 자칫 탑승객 간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도 고려했다.

그러나 노선번호가 표시된 일부 버스만 줄을 서서 타던 방식에서 29개 노선버스가 모두 안내판 앞에 정차해 승객을 탑승시키는 방식으로 변경된 뒤 정류소는 아수라장이 됐다. 안내판 앞에 서기 위해 광역버스가 줄줄이 늘어서는 바람에 서울역부터 명동입구까지 '열차현상(버스가 꼬리를 물고 늘어서는 상황)'이 가중돼 교통정체가 심해지고 시민의 탑승 대기 시간도 덩달아 길어진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부 버스만 줄서기 했는데 대부분 버스가 줄서기 하니 안 막힐 수가 없다" "버스가 다 명동에 붙어 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1시간 걸리던 퇴근길이 2~3시간으로 늘었다" "지옥이 따로 없다" 등 댓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다시 기존 방식대로 버스 탑승

시는 부랴부랴 이날 표지판 운영을 이달 31일까지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저녁부터 탑승객들은 표지판 운영 전과 같은 방식으로 광역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제도 시행 이전부터 정류소 바닥에 각 운수회사에서 설치·운영해온 12개 노선은 정차표지판을 유지해 탑승객 혼란을 최소화한다.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버스정보안내단말기(BIT)에 관련 정보도 표출한다.

또 수원 방면 4개 노선(M5107, 8800, M5121, M5115)과 용인 방면 1개 노선(5007)은 명동입구 정류소에 정차하지 않고 광교에 있는 우리은행 종로지점 인근 신설 정류소에 서도록 정류소를 분산했다. 9401번 버스의 경우 롯데영프라자 시내버스 정류소로 정차 위치를 변경해 운영할 예정이다.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현장에서 승객의 안전한 승하차를 지원하는 계도 요원도 투입한다.

우여곡절 끝에 승차 방식이 이전으로 돌아온 이날 퇴근길은 조금은 덜 혼잡한 분위기였다. 인근에서 직장을 다닌다는 김동혁(33)씨는 "요 며칠간 버스 한 번 타겠다고 인파에 휩쓸리고 뒤엉켜 고통스러웠는데 어제보다는 나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적잖은 시민들은 "이제 여기서 타는 것 맞냐"고 서로 물어보고, 노인들은 정류소 주변을 여러 차례 뱅뱅 도는 등 일부 혼란은 불가피했다. 제대로 된 현장 진단도 없이 정책을 바꾼 시의 탁상행정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김영미(53)씨는 "3, 4일 전 딸 연주회를 마치고 밤 10시에 집에 가려 정류소 왔더니 그 야밤에도 너무 막혔다"며 "시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는 장기적으로는 경기도와 협의해 이달 안으로 광역버스 노선 조정을 완료하고, 일부 노선의 정차 위치 조정과 회차지 변경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아울러 혼잡 상황이 완화되면, 문제점을 보완해 다시 표지판을 운영하는 등 추가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박민식 기자
서현정 기자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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