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은 60대 남성이 자행한 정치 테러다. 아직 단정할 수는 없으나, 피의자 행적과 주변인들의 진술에 비춰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 쌓인 일반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치가 대화와 타협보다 유권자를 자극하는 데 치중하고, 강성 지지층을 동원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며 적개심을 부추기는 행태가 지속된다면 우리 이웃이 또 다른 가해자로 돌변할지 모른다. 이번 테러를 놓고 '증오 정치'의 산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정치 이슈가 연일 부각돼 주목도가 높아지는 시기다. 유튜브 등을 통해 여과되지 않은 주장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증오를 키워가는 '숨은 추종자'의 표심이 언제든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4일 “해방정국 등의 테러는 정치 세력이 주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권이 폭력적 행동을 하는 추종자를 양산한다”고 진단했다. 특정 정파에 동조하는 자발적인 폭력행위가 언제, 어디서 분출할지 알 수 없어 과거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표가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는 단식 투쟁을 벌일 당시 정치 추종자의 폭력 행위가 잇따랐다. 50대 여성은 농성장 근처에서 경찰관에게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혔고, 70대 남성은 국회 본청까지 들어와 민주당 당대표실 앞에서 커터칼로 자해 소동을 벌였다. 앞서 같은 해 2월에는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불만을 품은 추종자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해 비이재명계인 강병원·박용진 의원 등을 쫓아다니며 “왜 배신을 했느냐”며 반말로 고성을 지르면서 위협했다. 지난 2일 부산에서 이 대표를 공격한 부동산 중개업자 김모(67)씨 역시 보수·진보 정당 당적을 번갈아 보유하고 정치 집회에 자주 참석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적 동기에 의한 범행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상대 진영을 증오하도록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 피습은 결코 우연한 돌발 행동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라며 “정치권이 주도하는 진영 대결로 인한 정치 증오와 팬덤 정치, 정서적 양극화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전과 대안 경쟁은 뒷전이고 공격을 퍼붓는 것으로 지지층을 자극해 손쉽게 정치적 이익을 누리려 한 정치권이 ‘비용 청구서’를 받아 든 것이라는 해석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극단주의나 팬덤 정치에 대한 경고음을 학계와 언론이 계속 울려오지 않았느냐”면서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팬덤을 통해 지지 동력을 얻는 쉬운 정치를 계속했다가 부메랑을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이 대표 테러 사건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여야는 4·10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붙잡기 위해 또다시 대립과 증오에 가득 찬 메시지를 쏟아낼 참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의 대민 접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조진만 교수는 “선거과정에서 (이 대표 사건과) 유사하게 정치인을 노린 공격이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자칫 각 진영의 강성 지지자들이 보복 심리에 기반해 경쟁적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범죄 프로파일러인 배상훈 우석대 교수는 “고조된 정치적 대결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증폭되며 모방 범죄가 발생하기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면서 “이번 총선은 문자 그대로 ‘피 튀기는 선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내영 교수는 “이번 총선을 지지자들의 공격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솎아낼 기회로 삼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