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일본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와지마시. 새해 첫날 규모 7.6 강진이 덮쳤던 이곳은 지진 후 이틀이 지났지만 여전히 폐허 그 자체였다. 노토반도 북쪽 해안마을 와지마의 대표적 관광지였던 '와지마 아사이치(아침 시장)'는 강진 후 덮친 화재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산과 바다만 있어 논농사를 짓지 못했던 이 지역 사람들이 1,000년 전 바다와 산에서 나는 생산물을 물물교환하면서 생겨난 유서 깊은 시장. 하지만 해산물, 야채, 특산품을 팔던 시장통 가게는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장뿐만이 아니었다. 와지마시 중심가엔 도미노처럼 차례차례 무너진 주택, 옆으로 픽 쓰러진 7층 건물 등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지진 피해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 지진이 1995년 6,400명이 희생된 한신대지진보다 지진 규모(7.6)가 크고, 흔들림의 정도가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필적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기준 이번 지진으로 73명이 희생됐는데 와지마시에서만 39명이 숨졌다.
와지마 시민들은 복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1일 강진 후 이어지는 여진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부서진 집은 물론 겉으로 보면 멀쩡해 보이는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내부는 지진으로 모든 물건이 떨어져 엉망이 된 데다 계속되는 지진에 또다시 무너져 깔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기 때문이었다.
피난민이 모여 있는 시청에선 발전기를 돌려 겨우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연말연시 할머니 집에 놀러 왔다 지진 때문에 이곳으로 피하게 됐다"는 마쓰노(20)는 "와지마에 오는 관광객은 반드시 한번 들르는 유명한 시장이었는데 이렇게 완전히 불타 버리다니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실 물도 없고 화장실 상태도 끔찍하다. 빨리 물이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와지마 시내에서 떨어진 산간 마을 미이마치에 거주하는 몬젠 도오루(57)는 집 근처 주차장을 간이 피난소로 만들어 밤엔 자신의 차 안에서 잔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지진이 많이 일어났지만 이번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고 1일 강진을 회고했다. 전화와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이곳에서 바깥 소식을 알 수 있는 것은 지역 신문이 발행한 호외뿐이었다. 마치 디지털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정부나 지자체가 가설 주택을 빨리 지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수도 도쿄를 출발해 이곳까지 오는 과정부터 험난했다. 지진 하루 만에 인근 가나자와시까지 가는 고속철도 신칸센은 복구됐다. 도쿄에서 3시간을 걸려 가나자와역에 도착한 뒤 대절해둔 택시에 올랐다.
그러나 가나자와시부터 와지마시까지 가는 길은 상황이 훨씬 열악했다. 도로는 100m마다 깊이 파여 있었다. 여기저기 무너져 있는 길도 많았다. 왕복 2차선 도로의 한쪽 차선이 무너져 절벽이 돼 있는 산길로 우회하기도 했다. 산사태로 통행할 수 없는 도로도 많았다. 노토반도 중부인 나나오시부터 아나미즈마치를 거쳐 5시간 30분 만에 와지마시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도 인터넷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원래는 차로 3시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와지마로 가는 도중 여기저기에서 마주친 부서진 가옥 밑에 혹시 사람이 갇혀 있다 해도 구조 요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지자체가 사망자나 실종자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와지마시 인근 스즈시도 강진과 쓰나미(지진해일) 피해가 컸다. 이곳에서만 23명이 숨졌다. 스즈시 시청 게시판에는 '매몰자 다수', '아이 2명이 밑에 깔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이즈미야 마스히로 스즈시장은 2일 저녁 회견에서 "괴멸적 피해를 당했다"며 "가옥의 90%가 완전히 파괴되거나 거의 파괴됐다"고 말했다. 이 지역엔 5,8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1일 이시카와현을 덮친 강진 희생자는 계속 늘고 있다. 지진 발생 당일 10명 미만으로 알려졌던 이시카와현 내 사망자 수는 2일 50여 명으로 늘더니 3일 오후 6시 기준 73명으로 불어났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오전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진 발생으로부터 40시간 이상이 경과해 구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무너진 건물에 갇혀 있다는 신고 등 구조 요청이 약 130건에 달한다"며 "구조 활동을 하는 자위대 인원을 1,000명 규모에서 2,000명 규모로, 구조견을 2배 이상으로 각각 늘리겠다"고 설명했다.
지진이 덮쳤던 노토반도에선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향후 다시 큰 지진이 일어날 위험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강진 이후 발생한 진도 2 이상 여진은 200여 차례에 달한다. 진도 4, 5의 강한 흔들림이 느껴질 때마다 피난소에 대피 중인 주민들은 계속 공포에 떨었다. 3일 오전에도 규모 5.5, 진도 '5강'의 강한 여진이 발생, 고속철도인 신칸센이 일시 정지하기도 했다.
지진 전문가인 박진오 도쿄대 교수는 "처음 발생한 규모에 필적하는 강한 여진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강진 이후 지진 활동은 폭 150㎞ 지역에서 활발해졌고, 앞으로도 넓은 범위에서 이어질 수 있다"며 "지하 암반에 걸린 힘의 균형이 변화해 활단층대가 자극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지진 때 발생한 흔들림 정도는 동일본대지진에 필적할 만한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이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강진으로 가장 강한 진동이 있었던 이시카와현 시카 지역에서 관측된 흔들림의 최대 가속도는 2,826갈이었다. 동일본대지진 때 미야기현 구리하라시에서 측정된 2,934갈에 버금간다. '갈'은 지진의 순간적 흔들림 정도를 나타내는 가속도 단위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번 지진은 진원 깊이가 16㎞로, 95년 한신대지진과 거의 같았다"며 "진원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았던 것이 흔들림 정도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