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가 2일(현지시간) 유럽과 중동의 ‘두 개의 전쟁’에서 반(反)서방 노선을 강화했다. 자국 영토에서 활동하던 이스라엘 스파이 수십 명을 체포하는 한편, 우크라이나로 향하던 영국 군함이 자국 해역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했다. 전문가들은 서방과 비서방 간 ‘중재자’를 자처하던 튀르키예 노선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튀르키예는 자국 영토에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협력한 스파이 3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번 수사 결과는 튀르키예가 자국 내 체류 중이던 하마스 조직원을 보호한 행위로 해석된다. 튀르키예 당국은 스파이의 활동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정황상 이들은 튀르키예에 거주하는 하마스 조직원 제거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튀르키예 등 해외 거주 하마스 지휘부를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국내외 이슬람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팔레스타인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이스라엘과 각을 세움으로써 지지층을 결집하려 한다는 것이다. 조르지오 카피에로 걸프스테이트애널리틱스 대표는 영국 BBC방송에 “에르도안은 이슬람 세계에서 강력한 무슬림 지도자가 되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이 같은 열망이 튀르키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노선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회원국이자 러시아의 주요 교역국으로 양측 간 중재자를 자처했지만, 최근엔 반서방 기치 아래 러시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외교아카데미 소속 루슬란 슐레이마노프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 기고에서 “하마스 지지라는 공통점이 모스크바와 앙카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날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영국 기뢰수색함 두 척의 자국 영해 통과를 불허한 것 역시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 선박은 지난해 12월 영국이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흑해 일대에 러시아가 설치한 기뢰를 탐지·해제하는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튀르키예는 ‘국제 협약에 따라 공정하게 자국 영해를 폐쇄했다’고 주장한다”면서도 “이날 조치는 우크라이나의 작전에 심각한 차질을 일으킬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