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바다에 넘쳐 나는 신비의 비만 치료제

입력
2024.01.03 19:00
25면

편집자주

알아두면 쓸모 있을 유전자 이야기. 바이오산업의 새로운 혁신과 도약으로 머지않아 펼쳐질 미래 유전자 기반 헬스케어 전성시대를 앞서가기 위한 다양한 기술 개발 동향에 대한 소개와 관련 지식을 해설한다.


머스크가 애용하는 비만 치료제
단일 단백질이 10여 개로 분화
단백질 다양성은 신약의 바다

새해가 되면 비록 그 결과가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새로운 습관들을 다짐하게 되는데 아마도 과체중을 개선하려는 노력 역시 많은 사람이 세우는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1년은 365일이니 작심삼일을 120번 지속만 해도, 체중을 얼마만큼 줄이겠다는 정량적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1년 후에는 최소한 좋은 습관 하나는 만들어질 수 있으니 내년 그리고 그 이후를 생각하면 시작이 중요함은 자명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너무 심한 비만인 상태라 시급한 조치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습관 개선보다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의학적 치료도 중요한데 최근에는 효과가 매우 좋은 비만 치료제 신약들이 개발되어 산업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위고비'라는 약을 처방받았고, 유명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는 '오젬픽'이라는 약을 이용해 체중 감량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그 약들의 효과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단기간에 수십㎏ 감량에 이들 신약이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위고비라는 신약을 개발한 덴마크의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해 유럽 증시의 최강자인 명품 브랜드 패션 기업인 루이뷔통 그룹을 제치고 시가 총액 1위에 올랐다. 주문을 맞추지 못해 생산이 밀려서 한국 출시는 아직 일정이 불투명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위고비나 오젬픽의 효능은 GLP-1 유사체 계열의 비만 치료제라는 점에 있다. GLP-1이라는 단백질과 유사해서 GLP-1이 작용할 곳에서는 제대로 작용하되, 원래 GLP-1이 분해될 곳에서는 덜 분해되도록 하는 게 작동 원리다. 즉 GLP-1의 기능이 당초 예정됐던 것보다 오래도록 유지되는 듯한 효과를 시도하는 약들이다.

GLP-1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1(Glucagon-Like Peptide 1)이라는 이름의 약자인데, 이름에 글루카곤(Glucagon)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글루카곤이라는 호르몬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사실 이 둘은 '프로글루카곤'이라는 한 개의 유전자의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한 개의 단백질이 분리되면서 만들어지는 길이가 짧은 단백질(폴리펩타이드)이다.

프로글루카곤이라는 단백질은 어떻게 분리되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9개의 펩타이드가 만들어진다. 그중에는 글루카곤과 GLP-1이 있고, 이들은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주는데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서 혈당을 낮추는 반면 글루카곤은 반대로 작동해서 혈당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GLP-1의 효과가 오래가도록 하는 물질들이 당뇨병 치료제 그리고 비만 치료제로 개발되어서 큰 성공을 이루고 있지만, 비슷한 성공 사례의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비만에 관여하고 있는 다른 유전자들이 많기 때문에, 제대로 연구만 한다면 새로운 비만 치료제를 만들어 낼 방법과 대상은 많이 남아 있다.

예컨대 염색체 11번에 있는 인슐린 유전자와 염색체 19번에 있는 인슐린 수용체 유전자 그리고 염색체 2번에 있는 프로글루카곤 유전자가 그 대상이다. 또 염색체 17번에 있는 글루카곤 수용체 유전자와 염색체 6번에 있는 GLP-1 수용체 유전자들도 대상이 될 수 있고, 프로글루카곤에서 GLP-1을 만드는 염색체 5번에 있는 PCSK1 유전자와 GLP-1을 분해하는 염색체 2번에 있는 DPP4 유전자들도 신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 더 나아가 탄수화물 대사와 관련되어 있고 염색체 16번에 있는 FTO 유전자 및 식욕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들도(염색체 11번에 있는 BDNF 유전자와 염색체 18번에 있는 MC4R 유전자 등) 후보가 될 수 있다.

사람 유전체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약 2만 개가 알려져 있고, 단백질을 만들지는 않지만 RNA 형태로 기능을 하는 유전자들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더욱 많은 유전자 기반 신약들이 개발되는 새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환석 유전자 라이프 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