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일 테노레'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조선 최초 오페라 테너 이야기다.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의대생 윤이선과 독립사상 고취 연극을 만드는 대학생 서진연, 이수한이 각자의 목적을 위해 조선 최초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린다. 경성시대, 독립운동, 오페라는 '일 테노레'를 관통하는 세 개의 중요한 요소. 경성시대와 독립운동은 이미 많은 창작 뮤지컬에서 다뤘다. 이탈리아어로 테너를 뜻하는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대를 다룬 여타의 창작 뮤지컬과 달리 '일 테노레'는 '오페라'라는 특별한 요소가 있다.
윤이선은 의대생이었지만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성악을 공부한 실존 인물 이인선(1907~1960)을 모티브로 했다.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호응을 얻은 작사 박천휴·작곡 윌 애런슨 콤비가 참여한 작품이다.
작품에선 가상의 오페라 '꿈꾸는 자들'의 아리아가 지속적으로 반복 연주된다. 여러 곡의 멜로디가 강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이선이 처음 듣게 되는 아리아 '꿈의 무게'가 테마곡으로 작품의 주요 장면에서 주제를 이끌어 간다. 두 번째 아리아 '그리하여, 사랑이여' 역시 오페라 연습 장면이나 극중극을 통해 오페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시험 시간, 이선의 머릿속에 온통 오페라 생각만 떠오르자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 장면은 '환상오페라'라는 곡으로 표현된다. 이 곡은 마치 짧은 오페라 한 편을 보는 듯한 재미를 준다. 이렇듯 오페라는 이 작품의 톤 앤드 매너이자 주제를 함축한다.
'일 테노레'는 경성시대와 독립운동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담았지만 작품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타일이다. 경성시대나 독립운동을 소재로 하면서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외형을 제대로 갖춘 창작 뮤지컬은 드물다.
오프닝 넘버 '새로운 세상'에서는 연극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는 대학생 진연과 수한을 소개한다. 또 주인공 이선이 진연이 쓴 홍보물에 매료돼 문학회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이선과 진연의 깊어질 관계를 암시한다. 1막 마지막 넘버인 '단 한 번의 기회'는 각 인물마다 오페라 공연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을 표현한다. 부민관에 올리게 될 오페라 공연이 이선에게는 오페라 가수로 내디딜 수 있는 기회고, 진연에게는 독립운동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할 기회다. 수한에게는 조선총독부 악질 간부를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각자 오페라를 다른 기회로 받아들이는 상황을 1막 마지막 곡에 배치해 2막의 갈등을 예고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음악은 극의 적재적소에 배치돼 극을 주도한다. 이선이 오페라를 처음 접하고 완전히 매료되는 베케 여사 오페라 수업의 아리아, 오페라에 참여한 무대 팀부터 앙상블·연주자 모두가 힘을 모아 오페라 장면을 완성하고 강압적 일제 통치 현실 속에서도 예술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맛보는 ‘작고 완벽한 세상’ 등이 대표적 예다.
'환상오페라'는 판타지 형식으로 뮤지컬의 매력을 보여주고, '작고 완벽한 세상'은 예술이 만들어 내는 내적 평화와 안정을 잠시나마 느끼게 한다. 이는 이선이 추구하는 세상으로,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사명 아래 훼손될 위기에 처한 그의 이상적인 꿈의 세계를 보여준다. '일 테노레'는 음악을 통한 뮤지컬적인 매력과 메시지를 제시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경성시대 독립운동이라는 진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작품 곳곳에 유머를 배치해 여유를 준다. 유머는 이 작품이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용한다. 더불어 이선과 진연의 고민은 시대를 넘어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 낸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 여기며 열정을 불태우는 이선의 감정은 어느 시대나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다. 국가적 대의와 연인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택해야 하는 진연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대극장 창작 뮤지컬이 초연에서 완성도 있는 공연을 선보이는 사례가 많지 않다. 뮤지컬 '일 테노레'는 테마곡의 지나친 반복과 긴장이 느슨해지는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성공적 스테디셀러로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2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