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법, '사법부 무력화' 입법 무효화… 네타냐후엔 치명타

입력
2024.01.0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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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일시 봉합했던 '사법부 무력화' 대립 
대법 결정 후 갈등 확산…부담 커진 네타냐후
외신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신뢰 약화될 것"

이스라엘 대법원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추진한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무효화하면서 이스라엘 사회가 1년 만에 다시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지난해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추진으로 연일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등 극심했던 갈등은 같은 해 10월 7일 발발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일시 봉합됐다. 그런데 새해 첫날 대법원의 무효화 조치로 정부와 사법부 간 대결이 재개되면서 네타냐후 총리는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1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날 대법관 15명 전원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해 7월 크네세트(의회)에서 가결된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을 무효로 처리했다. 무효화 찬성 8명, 반대 7명이었다.

개정 기본법은 장관 임명을 비롯한 행정부 업무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여부 심사 권한을 폐지하는 게 골자다. 네타냐후 총리는 2022년 12월 재집권하면서 이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행정부의 권한을 공무원인 법관이 무효화하는 건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게 추진 이유였다. 반면 반대하는 쪽에선 '네타냐후 측이 사실상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라며 거세게 반발해 왔다.

NYT "이스라엘 대혼란 다시 촉발할 수도"

찬성파와 반대파의 대립이 극에 달하면서 지난해 초 이스라엘 사회는 두 동강이 났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30주 동안이나 이어졌고, 이스라엘 최대 노동운동단체의 총파업 예고, 예비군들의 복무 거부 선언까지 맞물리며 '국가 폐쇄' 단계까지 이르렀다. 네타냐후 정부가 강한 반대 여론에도 개정 기본법을 밀어붙이려고 하자 '극심한 갈등 끝에 내전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다만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터지면서 이 사안은 봉합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결정으로 양쪽의 대립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정부와 사법부가 권력 대결을 하게 된 것"이라며 "1년 전 이스라엘의 심각한 혼란이 다시 촉발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법원 결정 직후 양 진영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통합에 대한 국가의 열망에 반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법안을 설계한 야리브 레빈 법무부 장관은 "우리 군대가 승리를 거두는 데 필요한 단결 정신과 배치된다"며 전쟁이 끝나는 대로 재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궁지 몰린 네타냐후, 대법 결정 무력화 나설까

반면 반대파는 "이스라엘 시민의 승리"라고 환호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대법원이 이스라엘을 분열시킨 역사상 최악의 재앙을 매듭지었다"고 평가했고, 입법 반대 시위를 이끌어온 단체 '카플란 저항 운동'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의 한 장이 이스라엘 시민의 승리로 끝났다"고 박수를 보냈다.

일각에선 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네타냐후 총리가 궁지에 몰리게 됐다고 평가한다.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리더십을 강화하려던 계획이 흔들리면서 정치적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직 대법원 결정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결정이 전후 이스라엘 국내 정치에 상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네타냐후 총리가 판결을 번복하려 한다면 전쟁을 위해 결성한 전시내각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짚었다. 영국 BBC방송도 "네타냐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더 약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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