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활력소이자 지켜야 할 자연”…’서울의 새’ 찾아 기록하는 시민들

입력
2024.01.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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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새를 탐조하는 '서울의 새 '모임 
2018년 4월부터 164종, 1만6,000마리의 새 찾아
"새를 보며 삶에 활력 생기고 자연의 소중함도 깨달아"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남산 팔각정 앞 광장.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졌지만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한 12명의 남녀가 망원경과 카메라를 양손에 들고 모였다. 서울에 사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 모임인 '서울의 새' 모임 회원들. 이날은 2023년 들어 122번째, 한 해 마지막 탐조 활동 날이다. 고정 회원 4명에 직장인, 대학생 등 비정기로 참여하는 회원 8명이 동참했다.

서울의 새는 새를 잘 보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에요.
새를 많이 못 보더라도 이렇게 생각하세요.
‘괜찮아, 오늘은 날이 아닌가봐’
서울의 새 회원 권양희씨

숨을 헐떡이면서도 숲길을 따라 남산 곳곳을 오르내리며 새를 쫓는 회원들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저 새 보면 뺨에 초승달 갈색 무늬가 있죠? 바로 직박구리예요.”, “나무발바리는 나무를 발발거리며 잽싸게 올라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회원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자 이진아(53) 대표는 새로운 새의 생김새와 이름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독려한다. 이들은 이따금 가만히 멈춰서 적막 속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는 귀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곳곳의 새, 관찰하고 사진 찍어 기록

서울의 새는 이 대표와 권양희(51)씨가 2016년, 남산에서 야생 조류를 관찰하는 서울시의 ‘남산의새’ 프로그램에서 만나면서 꾸려졌다. 동작구(이 대표)와 , 광진구(권씨) 등 살고 있는 동네에서만 새를 관찰하던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다 각자 동네에 사는 새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기적으로 만나 서울에 사는 새들을 관찰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2018년 4월부터 정기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매달 어린이대공원, 올림픽공원 등 서울 시내 탐조 장소 10여 곳을 찾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동참할 시민도 모집한다. 대부분 서울에 살지만 경기 일산, 인천 부평 등 서울 근교에서도 찾아온다. 지금까지 800여 회의 탐조활동을 하며 찾아낸 새는 164종, 1만6,000마리에 달한다. 다 같이 새를 관찰할 때의 장점은 ‘눈이 많다’는 것. 이 대표는 “작은 새들은 워낙 날쌔서 발견하기 쉽지 않은데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새들도 눈이 여러 개면 찾기 쉽다”고 설명했다.


탐조활동은 꼭 기록으로 남긴다. 동식물 생태를 모니터링하는 '네이처링’ 앱이나 새 사진을 모으는 '이버드' 앱에 관찰한 새의 종, 마릿수, 사진을 올린다. 매년 한 권씩 소책자도 만든다.

"새는 우리 삶의 활력소"...'자연의 소중함'도 알게 해줘

새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제각각이다. 이 대표는 19년 전 초등학생이던 딸이 새를 좋아해 같이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딸이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 바빠져서 나 혼자 보러 다녔는데 어쩌다 내가 더 새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은경(57)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휴직하고 탐조를 시작했는데 삶에 활력이 생기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제 이들에게 새는 삶의 일부다. 이 대표는 “해가 지날수록 ‘이번 달에는 어떤 새가 오겠지’ 이런 기대가 커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새를 보려고 부지런히 다니면서 집중하다 보면 걱정과 잡념이 사라져 저절로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고 설명했다.

많을 때는 1주일에 3, 4번 탐조활동을 하기에, 이들은 자연과 생태가 훼손되는 실상을 누구보다 빨리 포착해낸다. 요즘 여의도샛강생태공원에는 조류 개체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2022년에는 ‘수달 놀이터’를 조성하기 위해 나무와 덤불을 없애 박새, 쇠박새와 같은 작은 새들의 보금자리가 사라졌기 때문. 김씨는 "탐조활동을 하다보면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베어낸 나무, 훼손된 덤불까지 보인다"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의 새의 최종 목표는 ‘서울의 새 100년 기록’을 만드는 것. "우리가 탐조를 못 하는 때가 오더라도 그다음 어린 친구들이 활동을 이어가면서 100년의 기록을 쌓아 나가면 좋겠어요. 사실 마음 같아선 100년이고 1,000년이고 계속 새들 보면서 살고 싶어요.”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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