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과 '대결'로 가득 찬 증오의 정치... '이재명 피습'까지 불러왔나

입력
2024.01.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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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 정치 그만" 내부서도 자성 목소리
진영 내부서도 일상화된 낮은 수준의 테러 
상대 진영 '청산' '타파' 대상으로 보는 정치권

2일 부산에서 발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흉기 피습 사건을 접한 정치권이 큰 충격에 빠졌다. 2022년 대선 직전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에 이어 주요 정치인을 향한 테러가 일상화 양상을 띠고 있어서다. 특정 정당만이 아닌 정치권 전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영 대 진영은 물론 진영 내부에서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는 정치 분위기가 테러라는 극단의 형태로 표출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어서다.

정치권 "극단적 진영 대결이 낳은 비극" 자성

이 대표 피격 사건 직후 정치권에서는 진영 정치의 폐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증오와 독점의 정치, 극단적인 진영 대결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라고 진단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고 죽이는 '검투사 정치'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주 새로운선택 공동대표도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더 거세질 지금의 증오와 폭력이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극단적 행동과 경향성들을 즉각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 내부에서조차 우려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의 정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상대를 선의의 경쟁자가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권의 풍토는 최근 더 심각해지고 있다. 당장 이 대표 피습 사건이 터진 민주당도 그간 강성 지지층인 '문빠'에서 '개딸'로 이어지는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사실상 방관해 왔다. 팬덤 정치의 폐단에 대해 한 여권 관계자는 "내부 통합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외부의 적을 공격하는 돌격수로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여야 모두의 속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특히 이들이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고 좌표를 찍어 과격한 언어를 무기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격하는 수준은 사실상 낮은 단계의 테러에 가깝다. 지난해 3월 본보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직후 비명계 의원 페이스북에 올라온 악플을 분석한 결과, '척결' '죽어라' '몸조심하라' 등 신변을 위협하는 표현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두 번째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공격적 발언도 극단의 정치 상황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반국가세력 척결과 패거리 카르텔 타파 등을 외친 윤 대통령이나, 정치 입문과 함께 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주장한 한 위원장의 발언은 선명성을 노린 것일 수 있으나, 이들의 지지층들에게 상대를 제압해야 할 적으로만 인식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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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다 감성이 지배하는 정치 우려"

극단의 정치가 가져오는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자정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대부분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상생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태도나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서로 타협하거나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타도의 대상으로 보니 정치가 실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바꾸는 데 정치권이 앞장서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구체적으로 이성보다 감성이 지배하는 정치 풍토 개선 필요성도 지적했다. 그는 "정치는 이성적인 프로세스가 작동해야 할 영역"이라면서 "지금의 정치 현실은 정치인이나 유권자 모두 감성이나 감정에 더 의존하고 있어 이 부분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정준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