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기 SG배 한국일보 명인전] 나올 수 없는 진행

입력
2024.01.03 04:30
24면
흑 변상일 9단 백 신진서 9단
결승 3번기 제1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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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후 인공지능(AI)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 생활에 스며드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발전에도 의외의 역설이 존재한다. 사람이 어려워하거나 알 수 없는 영역에선 AI가 강점을 보이지만 반대로 인간이 쉽다고 판단하는 일에서는 실수가 잦다는 것. 바둑에서 역시 AI는 가끔 이런 실수를 범한다. 판 전체에서의 다음 선택이나 형세 판단처럼 인간이 어려워하는 영역에선 명확해진다. 그러나 부분적인 수 읽기나 사활 문제처럼 인간이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영역에서는 오류가 나곤 한다. 몇 가지 힌트를 주면 이내 찾아내지만 무언가 AI라면 부분적인 정밀함이 더 정교할 것 같은 우리의 인식과는 정반대다. 이를 반대로 풀어보자면 인간이 모르는 영역을 알게 됐을 때, 해당 영역에서 AI는 훨씬 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백1, 3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수순. 하지만 백3이 놓이자 인공지능은 이 수가 세 집가량 손해라고 이야기한다. AI가 제시한 수순은 9도 백1. 우변 흑2, 4를 유도해 일부러 뚫려주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의 대국에선 나올 수 없는 진행. 내가 앞에 둔 수와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AI는 매 장면 계산을 통해 선택한다면, 사람은 스토리텔링을 근거 삼아 기준을 확립한다. 변상일 9단은 실전 흑10으로 중앙 집 손실을 최소화하며 버틴다. 신진서 9단은 백11을 정확한 타이밍에 찔러가며 우세를 굳히는 중이다. 10도 흑1로 연결해 버티는 것은 백2의 붙임이 성립해 우하귀 흑 전체가 사활에 걸리고 만다. 백6까지 부분적으로 백의 꽃놀이패. 결국 실전 흑14로 후퇴하며 흑22까지 외길 수순에 가까운 교환이 이어졌다.

정두호 프로 4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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