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가 반복되면 '실력'

입력
2024.01.02 04:30
26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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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최근 공개한 군 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가 공분을 샀다. 명백한 우리 영토 독도를 두고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등과 나란히 ‘영토분쟁’이 진행 중이라고 기술하면서다. 이 외에도 논란과 오류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에서 온 편향성 논란은 물론, 다수의 한반도 주변 지도에 독도를 표시하지 않았으며, 북한의 국가를 ‘김일성 찬양가’라고 적시하는 등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틀렸다.

지난해 12월 28일 교재의 ‘독도 패싱’ 논란이 불거지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크게 질책하고 즉각 시정 등 엄중 조치할 것을 지시하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고 사과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됐으며 어떻게 고치겠다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국방부는 당일 오전 브리핑에서 “사실과 역사적ㆍ객관적 내용들을 기술한 것”이라고 자평하다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윤 대통령 질책 직후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단지 과정에서 있었던 실수일 뿐 역사를 왜곡하고 영유권 분쟁을 인정하려는 의도를 담지 않았다는 변명이다.

떠오른 것은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 논란이었다. 당시 국방부는 “군 내부적으로 판단해 결론 내릴 수 있다면 굳이 외부 협의는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학계 등 전문가 자문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는지에 대한 판단은 군이 했다. 그러고는 문제가 없다며 되레 전문가들을 모른 척했다. 이번 정신전력교육 교재 문제도 그랬다. 집필ㆍ자문ㆍ감수 모두 군이 주도했다. 역사학에도, 국제정치학에도 전문성이 없는 집단이 앞장선 결과는 혈세가 고물상 폐지로 바뀐 것뿐이다.

국방부의 행보에는 문제의 본질을 바로잡겠다는 여지조차 엿보이지 않는다. 군 주도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잇따른 논란의 근본적 원인이지만 신 장관은 “그분들(기존 자문ㆍ감수 위원들)이 못 보신 것을 볼 수 있도록 명망 있는 (민간) 자문위원들이 다시 감수를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공개 수개월 전 인쇄 준비를 마쳤던 교재를 문제가 불거진 뒤에서야 다시 살펴본다는 것은 문제가 됐던 부분만 땜질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소나기는 피해 가자’는 식이다.

해병대 장병 순직 외압 의혹 사건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 이번 장병 정신전력교육 교재 부실 파동까지 국방부와 군이 속시원히 책임을 통감한 적은 없다. 광복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이번 (교재) 파동은 우연히 일어난 실수가 아니라 장관의 입장에서 보면 독도는 일본에 내주어도 좋다는 그런 인식과 역사관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국방부과 신 장관은 이런 애먼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실수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선포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오답노트를 만들어 틀린 문제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잘못 생각했고 실수했는지를 되돌아보곤 한다. 반복된 실수는 곧 실력으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와 군 수뇌부는 자녀뻘인 청소년에게 배워야 하지 않을까.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