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적인 통신사 블룸버그는 '우리 모두 틀렸다'는 흥미로운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블룸버그는 해당 기사에서 2년 연속 월가의 베스트팀으로 꼽힌 모건스탠리 전략팀의 주가 예측을 가장 틀린 전망으로 꼽았다. 2022년 말 모건스탠리 전략팀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가 이듬해 4,000포인트를 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으나, 지난해 말 4,769.83포인트로 장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 전문가만 망신당한 게 아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채권 전략팀은 2023년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3.25%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놨지만 정작 연말 금리는 3.89%로 마감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19일에는 무려 5.00% 선을 넘어서며 ‘채권 투자의 죽음’을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경제전망도 비슷해 중국 경제가 코로나19 봉쇄 해제 덕에 날아오를 것으로 봤던 골드만삭스 런던의 글로벌 전략팀의 예측 역시 크게 빗나갔다. 중국 주식시장은 주요국 중에 가장 부진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빗나가는 첫 번째 이유는 전쟁과 테러, 전염병 등 외부 충격에 있다. 2022년 2월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 직후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고를 금융시장 참가자 대부분이 무시한 데서 볼 수 있듯이, 필자를 비롯한 경제분석가들에겐 약간의 낙관적인 편향이 존재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큰 경제적 손실을 입는지 너무 잘 알다 보니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망설임을 가지게 된다.
위의 그림은 2000년 이후 러시아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2014년 말 크림반도 합병과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물가상승 압력도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2015년 이후 러시아 경제의 침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상상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대유행도 마찬가지다. 1917년 세계를 덮친 스페인독감으로 수천만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역사책에서 배워 알고 있지만, 이게 눈앞에서 현실로 펼쳐지다 보니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다. 이 대목에서 고백 하나 하자면, 예방의학 전문가가 어쩌면 3년 이상 바이러스와 싸워야 할 수 있다고 전망할 때 필자 역시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본 바 있다. 그해 4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모 대학의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코로나19 유행은 이제 정점을 지났다"고 말한 것에 더 설득됐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누가 전문가인지 안다.
경제전망이 빗나가는 두 번째 이유는 데이터 제약 때문이다. 올해 중반까지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분석가는 '장단기 금리차(Term Spread)' 통계를 신줏단지처럼 받들었다. 장단기 금리차는 10년 만기 금리에서 2년 만기 금리를 뺀 값으로, 1970년대부터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때까지 중요한 경제 위기를 모두 예측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장기금리는 경제의 먼 미래를 예측해 결정되며, 단기금리는 지금 당장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이 펼쳐지면, 중앙은행의 금리인상 때문에 미래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란 뜻이 된다. 그런데 2023년에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단기금리가 올라 장단기 금리차가 1981년 여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호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2023년 3분기 미국 경제는 4.9% 성장한 데 이어, 4분기에도 2% 중반 이상 성장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40년 넘게 기가 막힌 예측력을 자랑하던 지표가 왜 빗나갔는지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떤 이들은 곧 불황이 찾아올 것이니 장단기 금리차는 여전히 믿을 만한 지표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선 채권시장의 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장단기 금리차를 믿어서는 안 된다며 맞선다.
이 논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오랫동안 잘 맞던 지표라도 언제든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지표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것만 보면 된다’ 같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쓰디쓴 교훈을 얻은 셈이다.
전망이 종종 빗나가는 마지막 이유는 심리적 결함 때문이다. 수많은 경제분석가의 독자는 일반 대중이 아니다. 물론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하지 않는 게 아니지만, 마음에 둔 타깃(대상)은 자산 운용 전문가들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같은 세계적인 연기금부터 거대 운용사, 사모펀드에서 근무하는 운용역이 진정한 목표다. 즉, 한 사람만 통하면 모두 일면식이 있는 사람에게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발생하는데, 잠재 고객들은 해당 경제분석가가 이전에 쓴 보고서를 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 가지 문제가 얽히는 순간, 보고서의 정체성이 바뀌게 된다. 미래 경제 및 자산가격의 방향을 예측하려는 끈질긴 시도보다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자신의 전망을 포장하고 이전에 썼던 보고서와의 연관성을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 관건으로 부각된다. 국민연금 운용역으로 일하던 시절, 수많은 전문가를 만났지만 자주 자신의 주장을 업데이트하고 또 실수를 실시간으로 교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더 나아가 어떤 방향으로 시장 참가자들의 의견이 집중될 때, 용기 있게 반론을 펼치는 이는 더욱 희소했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하자면, 매년 연말에 나오는 경제전망은 믿을 게 못 된다. 의무적으로 두꺼운 자료를 쓰다 보니 예전에 썼던 글을 재활용하기도 하고, 또 반응이 좋았던 예전 글의 맥락을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니 말이다.
대신 이 가운데 시장의 전체 예상과 빗나가는 예측을 제시한 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시장의 주류와 반대되는 전망을 내놓는 과정에서, 탄탄한 근거를 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 년에 한두 번 보고서를 쓰는 이보다는 수시로 꾸준히 보고서를 내고 자신의 기존 전망을 어떤 방향으로 수정했다고 명기하는 이들이 더 뛰어난 예측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마지막으로, 최근 모 증권사의 리서치 센터가 발간한 '2023년 나의 실수'라는 보고서를 읽고 감동받아 이 글을 쓰게 됐음을 밝힌다.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틀렸고, 또 앞으로 전망을 함에 있어서 고쳐 나가겠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제목에서부터 시작하는 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부디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보고서가 많이 나와, 더 정확하고 또 과거의 실수를 교정하는 방향으로 선순환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