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출된 '태광 2인자' 소환... 검찰, 그룹 총수 이호진 정조준

입력
2024.01.02 04:30
11면
'무혐의 종결' 김치·와인 강매 의혹 재수사
이호진 공백기 그룹 총괄한 김기유 입 주목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사면 반년도 지나지 않아 검찰 수사선상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2년 전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김치·와인 강매 사건뿐 아니라, 최근 불거진 골프장 회원권 강매 의혹을 들여다보며 이 전 회장 쪽으로 포위망을 좁히고 있는 모양새다.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 용성진)는 지난해 11월과 12월 김기유 전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장을 수차례 소환 조사했다. 이 전 회장이 횡령·배임 혐의로 수감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을 때, 그를 대신해 그룹 업무를 총괄한 ‘대리인’이 바로 김 전 실장이다. 검찰은 태광 측에 대해 고발이 접수된 사건과 관련해 김 전 실장을 상대로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검찰은 2021년 8월 이 전 회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김치·와인 강매 사건을 다시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4~2016년 총수 일가가 소유한 휘슬링락 컨트리클럽(CC)과 메르뱅에서 만든 김치와 와인을, 태광 계열사들이 고가에 구매하도록 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당시 검찰은 김 전 실장을 주범으로 결론 내린 뒤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건강 악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이 전 회장은 ‘재무상황 등을 보고받거나 거래를 지시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김치·와인 사건은 대법원 행정소송에서 불씨가 되살아났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이 전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김기유 실장이나 경영기획실이 이호진 회장 몰래 김치·와인을 거래할 동기를 생각하기 어렵다"며 "(김기유도) 오히려 경과를 보고해 자신의 성과로 인정받으려 했을 것”이라고 결론 내,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특히 대법원은 “공정거래법상 ‘관여’는 특수관계인(총수 등)이 부당한 이익 제공을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관련 보고를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사실상 이 전 회장의 관여를 시사했다.

검찰 수사 당시 책임을 떠안아 총수 일가를 보호했던 김 전 실장과 이 전 회장 관계가 최근 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 전 회장이 복귀한 뒤 과거 김 전 실장이 주도한 사업(롯데홈쇼핑 사옥 매입)과 관련한 내부감사가 이뤄졌고, 이 여파로 김 전 실장이 해임됐다. 재계 일각에선 토사구팽을 당했다는 얘기까지 돌았는데, 이 상황에서 검찰에 나간 김 전 실장이 이 전 회장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광 측은 "롯데홈쇼핑 사옥 매입은 김 전 실장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김 전 실장은 회장이 없는 동안 각종 이권 사업에 개입해 회사에 피해를 끼친 전횡이 내부감사로 발견돼 해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은 태광의 골프장 회원권 강매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광은 2015년부터 계열사 협력업체에 거래·계약 조건으로 휘슬링락CC 회원권 매입을 강요한 의혹을 받고 있다. 공정위가 조사 중인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검찰에도 고발장이 접수됐다. 이 사건 역시 당시 휘슬링락CC 운영사 티시스의 대표를 겸직한 김 전 실장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별도로 태광은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경찰(서울경찰청) 수사까지 받고 있는 중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태광 수사의 성패는 이 전 회장의 관여 여부에 대해 김 전 실장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진술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동순 기자
강지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