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지원' 막으려 프랑스 극우정치인 포섭 여론 공작"

입력
2023.12.31 17:15
WP, 러 내부 문서·프랑스 의회 조사 인용 보도
러, '3차 대전 발발, 경제 침체 등 말하라' 지시
프랑스 내 불안감→'반우크라' 여론 조성 꾀해
"국민연합, 크렘린궁과 특수 관계"... 러는 부인

러시아가 유럽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약화시키기 위해 프랑스에서 극우 정치인들을 포섭하고 여론 공작을 벌여 왔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계속하면 프랑스 경제가 침체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 등의 메시지를 퍼트려 불안감을 조성,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여론을 키우려는 목적이었다는 게 신문의 해석이다.

크렘린궁 "프랑스 SNS 적극 활용을"

WP에 따르면 유럽 안보 당국은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대통령 행정실 제1부실장이 프랑스 정계 인사, 오피니언 리더, 활동가 등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프랑스 내 정치적 불화를 조장하라'는 임무를 하달했다는 내용의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문서를 입수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프랑스 등 유럽의 지원 축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결의 약화를 공작 목표로 삼았다.

적극 활용된 건 프랑스의 SNS였다. SNS에 올릴 글 내용도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크렘린궁이 지난 6월 작성한 메모에는 "중년의 프랑스인에게 '우크라이나 지원은 어리석은 모험이라고 비판하는 200자짜리 글을 작성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적혀 있다. 또 '대러시아 제재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생활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 '러시아와의 대결로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수 있다'는 문구도 있었다.

실제 보안업체 알토인텔리전스의 분석 결과, 6월 말 프랑스에서 '알제리계 10대 청소년 경찰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생산된 SNS 게시물 중 30.6%가 친러시아 계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디지털 감시 당국인 비기넘(VIGINUM)은 "러시아의 새로운 디지털 간섭 작전"이라며 "국제 위기를 악용해 프랑스와 유럽의 혼란을 조성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친러시아 SNS 계정, 프랑스 극우 정치인과 연계"

러시아가 여론 공작 대상으로 프랑스를 고른 건 극우 진영의 약진이 가장 두드러진 국가이기 때문이다. 여론전 중심에 있었던 건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이었다. 프랑스 의회는 6개월간 '외부 세력의 내정 간섭'을 조사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자국 이익을 증진하고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자 장기적으로 허위 정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며 "RN이 크렘린궁과 특권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실질적인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알토인텔리전스도 "친러시아 SNS 계정 대부분이 르펜과 같은 프랑스 극우 정치인과 연계돼 있다"고 짚었다.

특히 RN과 러시아와의 금전 거래 의혹도 불거졌다. 프랑스 의회는 RN이 2014년 러시아 은행에서 940만 유로(약 134억7,687만 원)를 대출받았으며, 2017년 아부다비 은행을 통해 대출받은 800만 유로(약 114억6,968만 원)의 출처도 러시아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러시아 정부는 그러나 '가짜뉴스'라며 WP 보도를 일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완전한 가짜이자 쓰레기"라며 "유럽 전체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고통받는데, 굳이 홍보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했다.

류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