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총선을 이끌 공천관리위원장에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총선을 100여 일 앞두고 당 내부에서 공천 갈등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진보 성향의 무게감 있는 원로학자를 내세워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29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임 교수를 공관위원장에 임명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임 교수가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 관리 업무를 이끌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변화를 주도하는 민주당, 이기는 민주당이 될 수 있도록 선거 관리를 해 주실 것"이라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당 지도부는 공관위원장을 외부 인사 중 선택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임 교수를 가장 유력한 후보(본보 28일 자 3면)로 검토해 왔다.
임 교수는 이론뿐 아니라 현실 정치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진보 정치학자로 꼽힌다. 1991년부터 이화여대를 거쳐 고려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김대중 정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에는 중도진보 싱크탱크 '좋은정책포럼'을 창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민주당은 이날 이례적으로 20쪽 분량의 임 교수 프로필을 배포했다.
임 교수는 특정 팬덤에 휩쓸리는 계파 정치를 한국 정치의 양극화를 키우는 퇴행적 요소라고 비판해 왔다. 2019년 조국 사태 당시 한국일보에 '광장 민주주의 없는 광장 정치'라는 기고를 통해 "파당적 광장 정치는 파당 집단 간의 분열, 증오와 유혈적 대결로 내란 또는 내전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당대표실 관계자는 "임 교수가 임명됐다는 것은 민주당이 공천권을 내려놨다는 의미"라며 "그 정도 각오가 없었다면 모셔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 임명에 대한 당내 시선은 엇갈린다. 친이재명계 한 중진 의원은 이날 "비명이든 친명이든 '계파 나눠 먹기' 공천은 하지 않을 분"이라며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당을 혁신해 주실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비이재명계 인사들은 "공관위원장 임명이 아닌 더 근본적인 혁신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통합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상황에 이 대표가 돌파 카드로 공관위원장 임명을 서둘렀다는 점에서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다. 비명계 한 초선 의원은 "임 교수가 공관위원장을 맡을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당내 갈등 상황이 진행형이라 어떤 식으로 공관위를 이끌지는 더 지켜보고 평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