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안보 위협을 우려해 첨단 반도체 등의 대(對)중국 수출길을 틀어막은 미국 정부가 이번엔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인 '라이다'(LiDAR)를 다음 타깃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미국인들의 민감한 정보 등을 탈취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중국산 라이다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자율주행차 개발사들의 반대가 만만찮아 현실화 여부는 미지수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8일(현지시간) "미래형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이미 불안한 미중 관계에 새로운 발화점이 되고 있다"면서 그 중심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라이다 기업 아우스터가 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우스터는 '중국산 라이다가 미국인을 감시하고 민감한 인프라 정보를 중국에 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파하고 있으며, 중국 의존도가 너무 커지기 전에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정치권을 설득 중이다. 구체적으로 △중국산 라이다 센서 활용을 전면 금지하거나, △관세를 부과할 것을 하원 중국특위 의원들과 당국자 등에게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아우스터 측 주장에 정치권도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중국특위 의원 20명은 상무부 등에 '중국 라이다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넣을 필요가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피트 부티지지 교통장관은 "경제 안보 등에 과도한 위협이 되지 않도록 면밀히 감시해야 한다"며 아우스터의 주장에 동의하는 듯한 입장을 폴리티코에 밝혔다.
라이다는 사물에 빛을 발사해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강도를 측정해 주변 환경을 3차원으로 그려내는 부품이다.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린다. 시장조사업체 아이디테크엑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세계 라이다 시장은 미국과 중국이 대략 30%씩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늦게 뛰어들었으나,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미국과 시장을 양분하는 위치까지 올랐다.
중국과 중국 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미 중국대사관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은 국가 안보라는 개념을 보편화하며 '중국 위협론'을 과장하고 있다"고 했다. 아우스터와 특허 침해 관련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대표 라이다 기업 허사이는 "(아우스터가) 상업 경쟁을 정치·국가 안보 사안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산 라이다를 차단하면 미국 자율주행차 산업엔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허사이의 라이다를 쓰고 있는 미국의 자율주행차 업체들도 같은 이유에서 중국산 라이다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허사이는 자율주행택시 '크루즈' 사업부를 둔 제너럴모터스(GM)와 아마존 소유 자율주행 스타트업 죽스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한 자율주행차 업체 관계자는 "시장에서 우리 사업에 필요한 성능과 신뢰성을 갖춘 센서는 허사이의 라이다뿐"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이처럼 찬반이 첨예한 만큼 시장에선 미국 정부가 과감한 무역 조치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폴리티코는 "제재가 결국은 미국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중국이 라이다 수출 금지를 검토 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은 지난 22일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등에 대한 보복성으로 라이다 수출 시 정부에 사전 신고하고 허가를 받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