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라며 대표직 사퇴에 준하는 강도 높은 쇄신책을 주문했다. 이낙연 전 대표에 이어 정 전 총리까지 이 대표의 '희생'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쇄신과 통합 메시지 수위를 놓고 이 대표 부담도 더 커지게 됐다.
이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회동했다. 지난 20일 김부겸 전 총리와 이 대표의 만남처럼 전직 총리에게 당 내홍을 수습할 고언을 듣는 자리였다. 정 전 총리는 "단합이 선거 승리의 필수조건이다. 민주당 대표로서 책임감을 갖고 최근의 분열 상황을 수습하고 통합에 나서야 한다"면서 사자성어 '현애살수(낭떠러지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를 인용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집착을 버리고 비장한 결단에 나서라는 뜻인데, 사실상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동안 정 전 총리는 이 전 대표가 주장하는 이재명 2선 후퇴 주장에 선을 그어왔다. 앞서 김 전 총리가 이 대표와의 회동에서 이 전 대표와의 조건 없는 만남을 촉구한 데 비하면 한층 수위를 높인 셈이다. 이에 이 대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혁신, 당내 통합 두 개를 조화롭게 하는 게 어려운 문제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전 총리가 말한 '특단의 대책'과 '결단'을 두고는 양측은 엇갈린 해석을 내놨다. 이 대표 측에선 "이 전 대표가 요구하는 사퇴, 2선 후퇴, 비대위 구성과는 거리가 있는 얘기"(권칠승 수석대변인)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다만 정 전 총리 측 관계자는 "대표가 결단하면 본인도, 당도, 나라도 살 수 있다는 취지에서 일단 결단을 촉구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전 총리까지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이 대표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당내에선 이 전 대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삼고초려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실제 이 대표 역시 지난 주말 이 전 대표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만남을 요청했지만, 이 전 대표는 아직까지 화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측근을 통한 협의에 의견 접근이 안 돼서 지금은 협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 첫째주 안에 저의 거취를 국민께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연말까지 이 대표의 사퇴가 관철되지 않으면, 민주당 탈당과 신당 창당 작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