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5년 단위로 발간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대통령이 질책하고, 전량 회수하는 극약처방을 취한 적은 없었다. 왜 이처럼 대형사고가 난 것일까. 원인은 누가 교재를 만들었느냐에 있었다. 과거와 달리 민간 전문가를 배제하고 군이 주도하면서 사달이 났다.
교재 발간은 집필-감수-자문의 과정을 거친다. 이번 교재의 경우 집필진 10명 모두 현역 군인과 국방부 공무원, 군무원이었다. 김수광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 김성구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육군 준장), 추동호 국방부 정신전력문화정책과장(공무원) 및 육해공군 영관·위관급 장교 6명, 군무원 1명으로 구성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발간 교재 집필진이 국방대 교수 1명과 민간 대학교 교수 2명인 것과 대조적이다.
설령 집필에 오류가 있더라도 감수과정에서 바로잡으면 된다. 하지만 이번 교재의 감수진은 우경석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육군준장(진))을 포함해 국방정신전력원 군교수 4명, 국방부 산하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원 등 군 관련자가 전체 10명 가운데 5명을 차지했다. 2019년 교재 당시 감수진을 민간대학 교수 5명과 종합일간지 기자 2명으로 구성해 군이 아닌 민간의 시각에서 교재의 완성도를 높인 것과 차이가 크다. 당시 교재 발간에 참여한 인사는 28일 "수차례 세미나를 통해 팩트 체크는 기본이고, 교수들이 집필한 내용 가운데 미심쩍은 부분은 치열하게 토론하며 서로 이견을 좁혀나갔다"고 전했다.
자문진의 경우에도 올해 교재는 현직 육해공군 및 해병대 공보정훈실장 4명과 예비역 육군 준장, KIDA 책임연구원 등 전·현직 군 관련자가 전체 10명 중 6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신원식 장관 취임 이후 국방부 ‘정훈국’ 부활을 추진하고 장병 정신전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과적으로 오류가 속출하면서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이 뒤따를 전망이다. 반면 문 정부 때는 자문위원 10명 모두 민간대학 교수였다. 군이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고 혹여 편향된 시각에는 제동을 걸 수 있었던 셈이다.
‘참고문헌’ 부분도 차이가 두드러졌다. 2019년 발간 교재에는 고전문헌과 국방부, 정신전력원, 민간 출판 도서 및 논문이 균형 있게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번 교재에는 국방부 발간도서를 비롯해 정부기관이 발행한 책자와 문서만 적시했다. 참고했다고 밝힌 단행본과 논문 또한 육군대학과 정신전력원이 발간한 것이다. 사회 변화와 최신 흐름, 균형 잡힌 사고를 배제한 채 군의 일방적인 입장을 반영해 교재를 만든 셈이다.
국방부는 이날 "교재를 전량 회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집필 과정에 있었던 문제점들은 감사 조치 등을 통해 신속하게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교재를 준비하는 과정에 치밀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이른 시일 내에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한 교재를 보완해 장병들이 올바르고 확고한 정신무장을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