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정철, 김홍도가 예찬한 '삼척 죽서루' '밀양 영남루' 국보됐다

입력
2023.12.28 12:12
문화재청 28일 국보 지정

"삼척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내리는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차라리 한강의 남산에 담고 싶어라!"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1536~1594)이 동해안의 절경을 읊은 가사 '관동별곡'에서 '제1경'으로 꼽으며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임금에게 가져다 보이고 싶어 했던 강원 삼척시의 죽서루(竹西樓)가 국보로 승격된다. 빼어난 정취로 전국에서 몰려든 조선의 문인들이 많은 시문을 남겼던 영남의 대표 누각인 경남 밀양시 영남루도 국보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죽서루와 영남루를 국보로 지정한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들의 국보 지정 요청에 따라 전문가의 지정조사와 문화재위원회의 검토·심의를 거친 결과다.

정철, 정선, 김홍도가 찬탄한 절경 '삼척 죽서루'

목조누각 팔작지붕(맞배지붕 옆에 삼각형의 합각을 남기고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의 구조인 죽서루는 문헌상 기록으로 적어도 12세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서루(西樓)’로 불리다가 14세기 후반에 들어서 ‘죽서루’로 불리기 시작했다. 김수온(1410∼1481)의 '죽서루단청기(1472)', 허목(1595∼1682)의 '죽서루기(1662)' 등에 조선 전기에 재건된 이후 여러 차례 보수·증축된 기록이 잘 남아 있으며, 조선 후기 증축된 이후의 모습이 잘 보존돼 있다.
주변 하천인 오십천과 어우러지는 빼어난 경관 덕에 겸재 정선(1676~1759)의 '관동명승첩'을 비롯해 김홍도(1745~?), 강세황(1713~1791) 등 고려부터 조선까지 저명한 예술가들이 죽서루를 소재로 많은 시문, 가사, 그림을 남겼다. 조선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를 비롯하여 시인과 명신이 죽서루를 노래한 한시가 28점 전해진다.

고려·조선의 시인 몰려든 명소 '밀양 영남루'

고려 후기 관인 정지상(?∼1135)이 영남루의 야경을 찬탄한 한시 '영남사루(嶺南寺樓)'를 남길 정도로 영남루는 주변 경관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대루, 능파각, 침류각, 여수각으로 구성된 건물 자체의 조형미도 뛰어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명사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시문을 남겼는데 조선 선조 때 영남루에 걸린 시판이 300여 개에 이를 정도였다. 현재는 12개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풍부하게 남아 있는 각종 고증 기록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고, 아름다운 건축형식과 배치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예술적 가치가 높으며, 수많은 명사들이 탐방하고 교류하며 남긴 시문과 그림이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 또한 크기에 국보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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