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4일. 일과가 끝나갈 무렵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내용은 함구했지만 기자들 사이에선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로 비위가 드러나 물러난 뒤 취임한 추 전 장관이 그해 7월 사실상 사문화됐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윤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기자회견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추 전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조치를 국민께 보고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그간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여러 비위 혐의에 관해 직접 감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법무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을 직무배제하고 징계를 청구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었지만, 추 전 장관은 준비해 온 내용만 읽고 기자들의 질문에는 입을 굳게 닫은 채 기자실을 빠져나갔다. 차량에 오르기까지 요청과 항의는 무시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돌이켜보면 ‘정치인 윤석열’을 낳아 결국 오늘의 대통령을 만든 결정적 장면이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정직 2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은 윤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당시 윤 대통령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추 전 장관을 보며 환호하긴 했지만, 징계 청구를 했다는 말을 듣고선 ‘아, 이건 아닌데’ 싶었다”며 “징계 청구까지 가지 않았다면 현재 대통령은 다른 사람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3년여가 흐른 지난 19일. 추 전 장관이 기자회견 때 앙다문 입처럼 단호하게 밀어붙였던 윤 대통령에 대한 징계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징계 절차가 적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짚어 징계 처분을 취소했다. 추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 법무부가 ‘패소할 결심’을 해 제대로 재판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징계 청구 때와 다르게 민주당 지지자들의 호응은 시원찮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과도하게 권력을 사용한 데 대한 반발이 다양한 형태로, 여러 방면에서 현실에 반영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물리학의 기본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은 이렇게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시간적으로 격차가 있더라도 작용이 있으면 반드시 반작용이 있다. 정권을 잡은 지 1년 만에 ‘20년 집권설’을 내세웠던 거만함은 5년 만에 권좌를 내줬다. 권좌를 차지한 쪽은 1년 만에 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했다. 상대방을 죽이려면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해야 하고 또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상대방에 대한 ‘권’(權)의 행사 역시 반드시 뒤따를 반작용을 의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나,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얽어맬 수 있는 검경의 수사권 행사는 더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본질적으로 폭력인 수사권은 사회질서 유지 등을 위해 법과 제도에 의해 정당화했을 뿐, 반작용이 없을 수 없다.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라는 외력을 내력으로 힘겹게 버티던 그는 반작용의 방향을 본인에게 돌렸을 뿐이다. R.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