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도서관에 나타나 책을 망치는 ‘물귀신’보다 무서운 건

입력
2024.01.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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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도서관 물귀신’ (대산문화 2023년 겨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지박령(자기가 죽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영혼)을 만나면 “어떻게 지평좌표계로 고정하셨죠”라고 물으라는 밈(Meme·인터넷 유행어)이 한때 있었다. 지구의 공전과 자전 속도를 고려하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귀신이 한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농담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귀신이 비과학적인 이유가 수천 개에 이른다 해도 괴담은 불멸한다. 지금도 전국 초등학교의 도서관에 밤마다 홀로 책장을 넘기는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듯이.

대산문화 겨울 호에 실린 정보라의 단편소설 ‘도서관 물귀신’의 제목은 그렇기에 낯설지 않다. 왜 하필 ‘물귀신인가’라는 의문도 금세 풀린다. 물과 책은 상극이라서다. 밤마다 책이 젖고 서가 주변에 물이 흥건하게 고이는 사건이 반복되자 도서관의 비정규직 사서 ‘김 선생님’이 휴대폰 공기계로 퇴근 이후 서고의 풍경을 촬영하기로 결심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오래된 휴대폰 카메라에 찍힌 건 희끄무레한 덩어리. 김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이 덩어리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한다. 커피 한 잔을 대가로 수사 파트너가 된 야간 경비 ‘박씨 아줌마’와 함께.

1년 이상 일하면 줘야 하는 퇴직금 탓에 10개월씩 끊어서 용역업체와 재계약을 하는 박씨 아줌마와 김 선생님이라는 ‘비정규직 콤비’는 과연 물귀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비정규직인 두 사람의 처지만큼 이들의 일터인 지역 도서관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과거 5층짜리 건물 전체를 썼던 도서관은 찾는 이가 줄면서 이제 지하 가장 깊은 지하 3층만을 겨우 쓰는 데다 어린이가 들어오려면 출입 사유서에 교장과 부모님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노키즈존’이 됐다.

영 미덥지 않아 보이는 이들 콤비가 사건 해결에 나서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차피 도서관과 책들은 물귀신의 장난으로 훼손되든지 말든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탓이다.

정 작가는 스스로를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의 작가’라고 소개하지만, 이 소설은 귀신이 등장하는 괴담이라는 비현실보다 무서운 현실을 향한 분노의 서사다. “삼일절에 일본 제국에 맞서 조선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을 했다”고 언급한 역사 관련 콘텐츠가 ‘가짜뉴스’로 신고당하는 소설 속 세상은 일종의 디스토피아다. 하지만 정말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에서 그칠까’라는 서늘한 물음이 따라붙는다. 지난 10년간 문을 닫은 대학의 국어국문학과 등 인문계열 학과 76곳과 도서관 예산 삭감을 공론화했다가 쫓겨난 도서관장 등은 이미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소설을 덮으면서 “귀신이 뭐가 무섭누. 인간이 제일 무섭지”라던 할머니의 푸념이 귓가에 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희망을 걸게 되는 존재 역시 인간이다. “알아보면 다 방법이 있을 거예요”라는 박씨 아줌마의 친절하지만 다분히 막연한 위로의 말에 분연히 일어나는 김 선생님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존재하기에.

전혼잎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