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식 검사입니다"... 더 킹 정우성 사칭해 29억 가로챈 보이스피싱 일당

입력
2023.12.27 14:40
20명 기소해 재판 넘겨.. 7명 추적 중
쇼핑몰 직원, 경찰, 검사로 역할 나눠 
검거된 적 있지만 증거불충분 풀려나

영화 '더 킹'에서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한강식 검사를 사칭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일삼은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이미 수사기관 조사를 받은 적이 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 피해가 더 커졌다.

서울동부지검 보이스피싱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수민)은 중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원 27명을 범죄단체조직, 범죄단체활동, 사기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이 중 19명은 구속 기소, 1명은 불구속 기소했고 아직 검거하지 못한 나머지 조직원 7명은 추가 수배했다.

합수단에 따르면, 일당은 2017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총책 '문성'이 조직한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에 가입해 중국 다롄·칭다오 보이스피싱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했다. 이들은 쇼핑몰 직원, 경찰, 검사로 역할을 나눠 3단계에 걸쳐 속이는 수법을 썼다. 우선 '인터넷 쇼핑몰 결제가 완료됐다'는 내용의 문자를 무작위로 뿌린 다음, 피해자가 연락하면 쇼핑몰 직원 사칭 조직원이 "결제 사실이 없다면 명의가 도용된 것이니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해주겠다"고 꾀었다.

이후 형사를 사칭한 2차 상담원이 접근해 '강수강발'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유도했다. 이 앱은 수사기관에 전화를 하더라도 강제로 보이스피싱 조직원 전화로 연결하게끔 설계됐다. 2단계까지 성공하면 더 킹의 등장인물 한강식 검사를 사칭한 3차 상담원이 돈을 뜯어냈다. 해당 조직원은 "계좌가 범죄에 이용돼 돈을 국가 안전계좌로 송금하면 수사 종료 후 반환해 주겠다"고 피해자를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 58명의 돈 29억 원을 가로챘다. 3억300만 원가량을 빼앗긴 피해자도 있었다.

일당 중 일부는 2018년에도 1억6,170만 원 규모의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가 접수돼 수사기관에 체포됐었다. 하지만 당시 조직원들이 혐의를 부인했고, 수사에 진척이 없자 이듬해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다. 그러다 재차 수사의뢰를 받은 합수단이 올 1월부터 재수사에 나서 조직원들의 출입국 내역과 인터넷주소(IP), 범죄계좌 등을 추적해 대거 붙잡았다.

합수단은 조직원 10명의 재산 5억7,000여만 원을 특정해 추징보전 결정을 받아냈고, 추가 재산이 확인되는 대로 환수조치할 방침이다. 김수민 단장은 "아직 잡히지 않은 총책 등은 국제 공조수사를 통해 송환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며 "택배 해외발송 등을 사칭한 스미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의심스러운 연락이 오면 끊어달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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