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피해 7개월 딸 구하고 숨진 아빠, 성실한 약사였다

입력
2023.12.27 07:08
도봉구 화재 사망자 빈소 찾은 지인들
"모범적 신앙인"... 성탄절 비극에 황망
"리더십 있고 자상해 후배들이 따랐다"
부모 구하고 숨진 임씨 유족 "가슴 찢어져"

"솔선수범하고 주변 사람 아끼던 좋은 분이었는데, 어떻게 아이들만 남기고…"

26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 성탄절 새벽 서울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 화재로 어린 두 자녀를 살리고 세상을 떠난 박모(33)씨의 빈소가 차려졌다. 빈소를 찾은 박씨 지인들은 황망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은 25일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불이 나자 재활용 포대 위로 2세 딸과 아내 등을 먼저 뛰어내리게 한 뒤, 본인도 7개월 된 딸을 포대기와 이불로 감싸안고 몸을 던졌다. 아이를 살리느라 정작 자신은 지키지 못한 고인은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고인의 유족은 슬픔으로 인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을 박씨 큰아버지라고 밝힌 유족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제 (사고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가장 예뻐하던 조카였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빈소 앞에 놓인 근조화환 중에는 유족 이름으로 "사랑하는 ○○! 짧은 생 멋있게 살다 간다"라고 적힌 조화도 있었다.

지인들은 박씨가 생전 성실한 신앙인이었다며 성탄절에 일어난 비극을 실감하지 못했다. 같은 교회를 다녀 고인을 8년간 알고 지냈다는 A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박씨가) 평소 모범이 되는 신앙인이었는데 믿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교회 신도였던 B씨는 "고등학생 때 처음 교회에서 봤는데 동생들을 뒤에서 묵묵하게 챙겨줬던 분"이라며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고인은 서울의 모 대학 약학과 출신으로 재작년부터 약사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엔 학과 대표나 학생회장을 도맡으며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 박씨 대학 동문이라는 약사 C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리더십 있고 자상하던 선배라서 평소 후배들이 무척 아끼고 따랐다"고 전했다. 박씨 대학 선배 강창민(33)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고인이) 운동도 잘하고 엊그제에도 전화한 사이인데 믿기지 않는다"며 "뉴스를 보고 집 근처인 것 같아 연락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경찰서에서 확인했다"며 황망해했다.

고인의 가족은 불과 6개월 전 이 아파트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인을 아는 아파트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둘째가 생겨 '집을 좀 넓혀야겠다'며 올해 6월 같은 아파트 24평에서 38평으로 이사한 것"이라며 "박씨와는 3년을 알았는데 성실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같지 않게 꼼꼼했다"고 전했다.

박씨 빈소가 마련되기 하루 앞서 서울 노원구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는 임모(37)씨의 빈소가 먼저 차려졌다. 26일 오전 빈소 내 한편의 작은 방에서는 임씨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임씨는 10층 거주자로, 화재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 부모님과 남동생을 먼저 대피시켰다. 임씨는 가장 마지막으로 집에서 나와 화재를 피하려 했지만 11층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결국 숨졌다.

임씨 아버지는 조선일보에 "평소에 맛있는 것도 자주 사오고 여행도 보내주던 착한 아들이었다"며 "월급 타면 월급날마다 같이 밥도 먹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도 사줬다"고 말했다. 또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가족 다 살리고 혼자 죽으면 어떡하냐"며 슬퍼했다. 임씨의 고모 C씨는 "(임씨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성탄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다 사고를 당했다"며 "그 착한 아이가 가족만 살리고 혼자 간 게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이번 화재로 박씨와 임씨 2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전날 오전 소방 등과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한 후 '실화'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화재가 시작된 301호에서는 다수의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발견됐다. 경찰은 조만간 관련자들을 불러 정확한 화재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