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외국인도 재벌 총수로 지정돼 공정거래위원회 감시를 받게 된다. ‘총수 판단 기준’ 논란은 쿠팡이 촉발했는데, 정작 미국 국적의 김범석 쿠팡 의장은 제도 개편 후에도 총수 지정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공정위가 지정 기준을 구체화하며 마련한 예외 조항 탓이다.
공정위는 27일 동일인(총수) 판단 기준을 구체화하는 내용이 담긴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동일인(총수)’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사람이나 법인을 뜻한다. 공정위는 매년 5월 1일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자를 총수로 지정해 감시해왔다. 법인이 아닌 사람(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본인 및 친인척과 관련된 출자·자금거래 등 내역을 공시해야 하고 공정거래법상 사익 편취 감시까지 받게 된다.
‘총수 판단’ 기준 논란의 시발은 쿠팡이다. 쿠팡은 2021년 자산총액이 5조 원을 넘으면서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는데 김 의장은 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총수 지정을 피했다. 당시 공정거래법엔 외국인 총수 지정에 대한 근거가 없어, 공정위는 김 의장 대신 쿠팡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해 국내 기업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총수 지정 때 국적과 관계없이 적용하는 판단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공정위는 이 외에도 △기업집단 최상단회사의 최다출자자 △기업집단의 최고직위자 △기업집단의 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 △내·외부적으로 기업집단을 대표해 활동하는 자 △동일인 승계 방침에 따라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결정된 자 등 다섯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총수 지정을 피할 수 있는 예외 조건도 명확히 생겼다는 점이다. ①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개인이 최상단 회사를 제외한 국내 계열회사에 출자하지 않고 ②해당 개인의 친족이 국내 계열사에 출자하거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③개인 및 친족과 국내 계열사 사이에 채무보증이나 자금 대차가 없으면 총수에서 제외한다.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면, 기업을 지배하는 자연인이 있더라도, 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재벌 총수들마저 이 예외 조항을 이용해 동일인 지정을 피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쿠팡 김 의장은 총수 지정을 피해갈 가능성이 크다. 김 의장은 쿠팡의 지주회사 격인 미국법인 쿠팡Inc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 계열사 지분은 없다. 김 의장의 동생 부부가 쿠팡 계열회사에 재직 중이나 공정거래법상 임원에 해당하는 직급은 아니다. 공정위는 쿠팡의 채무보증과 자금 대차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쿠팡이 내년 5월 기업집단 지정 전까지 예외 조항들을 충족시킨다면 김 의장은 총수에 대한 감시를 또 벗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