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전'이 민주당의 뿌리인 호남까지 파고들었다. 비이재명계가 다수인 현역 의원들에게 '찐'이재명계를 주장하는 원외 인사들이 거친 도전장을 내밀면서 잡음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 지지율이 30%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텃밭 민심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공천 갈등이 조기에 호남을 뒤덮을 경우, 자칫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당한 패배가 재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6일 민주당 호남 의원들은 전날 퍼진 이른바 '친명계 호남 출마 리스트' 여파로 술렁였다. 친명계 원외 인사 12명의 이름과 사진, 출마예정지를 정리해 모아 놓은 포스터인데, 친명계로 당 대변인을 맡았던 비례대표 김의겸(전북 군산) 의원을 비롯해 당대표 특보 정진욱(광주 동남갑)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강위원(광주 서구갑) 기본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대장동 의혹 검찰 조사 변호를 지휘하는 박균택(광주 광산갑)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타깃이 된 호남 지역 의원들은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한 식구들끼리 이렇게 대놓고 갈라치기에 나서는 것은 당에도 부담 아니겠느냐", "이재명팔이에 나서는 퇴행 정치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공천관리위원회도 구성되지 않은 시점에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은 현재 민주당의 호남 위상을 고려할 때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갤럽 조사(12월 1주)에서 이 대표의 호남 지지율은 30%에 그쳤다. 부동층도 45%다. 지난해 대선에서 호남이 이 대표에게 보냈던 득표율 80%대에 비하면 1년 9개월간 내리막길만 달려온 셈이다. 역대로 민주당 대표선수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호남이지만 "맹목적 지지를 보내던 시절은 지났다"(호남의 한 의원)는 촌평이 나오는 이유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은 "호남은 역대로 '될놈될'(될 사람은 된다)을 향한 전략적 선택이 강했다"며 "역대 대선주자와 비교해 이 대표의 지지율이 저조한 건, 호남이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정치분석실장은 "이재명 개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야권이 총선 승리를 위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차원에서 호남이 지지를 보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호남에서 표면화되고 있는 내부 갈등은 야권 분열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향후 공천 과정에서 탈락한 비명계 현역 의원들이 무소속이나 호남을 정치적 고향으로 삼고 있는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과 결합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실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안철수와 결합한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 28석 중 광주광역시 8석 싹쓸이를 포함해 23석을 차지해, 3석에 그친 민주당에 참패를 안겼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호남리스크를 회복할 관건은 결국 이 대표가 얼마나 통합 행보에 나서느냐에 달려있다"며 "친명만 내세울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인물을 내려보내야 호남 민심도 납득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