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앞에 서 있을 때가 많다. 뻔한 비유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다. 벽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다. 시를 쓸 때 그랬고 아닐 때도 그랬다. 약력에 쓸 것을 남기지 못한 나의 20대는 막다른 길을 거듭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길을 가로막는 벽 앞에 설 때마다 나의 힘은 항상 부족했더랬다. 이를테면 등단과 미등단 사이의 벽이 그랬다. 그럼 나는 지금 힘을 키워 벽 하나를 뛰어넘은 걸까? 정말 기쁘지만 그렇지 않다. 죄송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감사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말을 하나 싶다. 배부른 소리 말라고 혼내실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여전히 벽이 있겠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겠다.
무너뜨릴 수 없는 벽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 어쩌면 시를 쓸 때마다 그러한 실패의 확인과 응시를 반복할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무력감을 앞으로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을까? 스스로 질문한다. 그리고 변변찮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 밤도 벽 앞에 앉아 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겠다.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꺼내 읽겠다. 거기에 나의 길이 적혀 있겠다. 벽 너머에는 네가 있겠다. 그런 믿음으로 벽을 응시하겠다.
네가 있어 감사하다는 말이 영원히 부족하겠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너라고 불러본다. 금은돌 시인과 김승일 시인. 너라고 불러본다.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너라고 불러본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자주 상기하는 내가 되겠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 네가 있음을 볼 줄 아는 내가 되겠다.
너는 지금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중이겠지? 하지만 때로는 너를 덫이라 부르고 싶기도 하겠다. 혹여나 덫이 나를 빠트리는 중이라 해도, 기쁜 마음으로 입장하겠다.
△1998년 경기 안성 출생
△양업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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