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슨 “우크라·가자 ‘두 개의 전쟁’ 중국에 선물… 아주 위험한 시기” [석학 인터뷰]

입력
2024.01.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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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기획- ‘두 개의 전쟁’ 이후 세계]
그레이엄 앨리슨 미 하버드대 교수 인터뷰
“우발 사고·주변 사건이 미중 함정 빠뜨려
대만이 도화선… ‘불장난 말라’ 적극 말해야”

“아주 위험한 시기다(It’s a very dangerous period).”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레이엄 앨리슨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정치행정대학원) 더글러스 딜런 정치학 교수. 2017년 펴낸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을 통해 미국과 중국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며 대중에게도 유명해진 83세의 이 노학자가 인터뷰 내내 허스키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묵직하게 경고한 것은 ‘우연의 위험성’이었다.

그는 신중했다. 변수를 고려하고 확률로 얘기했다. 요약하면 이렇다.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게 의도와 필연만은 아니다. 전쟁이 잉태되고 배양되는 것은 저마다 다른 조건에서다. 사고(accident)는 우발하고, 도처에서 벌어지는 게 사건(incident)이다. 완전히 통제되지 못한 것들이 뒤섞여 원리를 알 수 없는 연쇄 작용을 일으키고, 나선형 층계처럼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상황은 옮겨 간다.

그렇게 전쟁은 소용돌이처럼 일어나고 커진다는 게 앨리슨 교수의 설명이었다.

포개진 두 개의 전쟁 중 나중에 시작된 전쟁이 먼저 끝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그가 보기에,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은 물론이고 3년도 채울 수 있다. 교착은 질기다. 소유하려는 러시아의 욕망과 내 것을 지키고 싶은 우크라이나의 본능이 팽팽히 길항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이 점화한 ‘가자 전쟁’은 1년 내에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이스라엘의 힘은 압도적이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축출될 것이다. 그러나 그 끝은 진짜 끝이 아니다. 증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앨리슨 교수는 두 전쟁을 바야흐로 도래한 다극(多極) 시대의 징후로 해석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80여 년간 지속되던 평화시대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30년 넘게 지속되던 미국 중심 단극(單極) 체제도 끝났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미국은 헤게모니를 잃었다. 예전 미국이 아니다. ‘외면할 수 없는 사실(brute facts)’ 중 하나다. 다극이 예고하는 것은 양극(兩極)이다. 냉전기 소련 대신 미국에 맞서는 상대는 이제 중국이다.

패권국과 도전국 간 구조적 긴장을 뜻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앨리슨 교수가 2012년부터 쓴 표현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맞붙은 펠로폰네소스전쟁을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서술하며 사용한 틀에서 착안했다.

냉전은 끝났지만 핵 시대는 끝나지 않았고, 미국과 중국이 ‘열전’(무력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앨리슨 교수는 걱정했다.

그에 따르면, 유력한 도화선은 대만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적극 발언해야 합니다. 전후 평화 질서를 깨지 말라고 말이죠. 대만에든 중국에든 미국에든 마찬가지입니다.” 불장난을 경계해야 한다는 그의 조언이었다.

앨리슨 교수는 미국이 대선을 치르는 2024년에는 한반도 긴장도 고조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핵 프로그램이 진전되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판을 달굴 것”이라면서다. 지난해 12월 평양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신호탄인 셈이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 하버드대 앨리슨 교수 연구실에서 한 시간가량 진행됐고, 이메일 질의 응답으로 보충했다.

배경: 다극 체제의 도래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기가 겹친다. 공교롭고 이례적이다. 우연한 일일까.

“모두가 아는 나라에서 터진 두 개의 전쟁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전쟁은 많았다. 내전을 포함하면 도처에 죽음, 죽음, 죽음이었다. 두 큰 전쟁의 발발 시기가 거의 같다. 사람들이 같은 그림의 일부분이라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각 전쟁에는 제가끔 고유의 사정이 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은 흥미롭다. 우리는 다극 세계로 이동해 왔다. 그 현실을 두 동시 전면전이 환기시켜 준다.”

-전쟁이 통제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뜻인가.

“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 우리는 단극 세계에 살아 왔다. 유일한 강대국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국제 환경이 형성됐다. 감사한 일이었다. 다극 세계에서는 많은 독립 정부들이 각자 자유 의지로 이익을 추구한다. 그럴 능력도 충분하다. 이제 미국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미국의 공개 경고에도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설마 러시아가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미국 편에 속하지 않던 다른 진영의 힘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중국만이 아니다. 러시아가 그렇고, 이란과 북한도 미국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을 한다. 그들은 말한다. ‘정말 고마워. 하지만 괜찮아. 필요 없어.’”

-미국의 동맹국 입장에서는 ‘메리트’가 줄었다.

“다극 세계에서의 삶은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더 많은 국가가 미국이나 미국 동맹이 선호하는 것과는 어긋난 선택을 할 수 있다. 북한도 그렇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김정은은 대답한다. ‘정말 고마워. 하지만 신경 쓰지 마.’ 핵실험도 하지 말라고 우리는 말린다. 말을 안 들은 대가로 중국과의 무역도 막았다.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할 수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나. 다극 세계에서는 많은 행위자가 우리 충고와 반대로 움직이리라는 것이다. 우리가 포기하고 운명을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 영리하고 전략적으로 이익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전망: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미국이 편드는 우크라이나는 거의 2년째 전쟁에 붙잡혀 있다. 다행히 나라를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4년 크림반도에 이어 동쪽 땅을 또 빼앗겼고 사람도 많이 죽었다. 적어도 시간이 우크라이나 편은 아니다. 지난 여름 대반격에 실패하고 내분의 겨울을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선진 북반구의 관심도 개전 첫해만은 못하다. 소모전의 출구를 찾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1월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좌절감이 배인 고백이었다. 막바지 전황의 징후인가.

“벌써 1년 전이다. 2022년 11월부터 우크라이나의 통제선(사실상의 국경)은 어느 쪽으로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도 알고 있다. 교착부터 휴전이나 정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한국은 연구자에게 좋은 사례다. 한국전쟁 당시 1951년 초쯤 38선 부근에서 사실상 전선이 고정됐지만, 2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정전협정(1953년 7월 27일)이 체결됐다. 지금도 평화조약은 없다. 수만 명씩 죽어 가던 전투는 멈췄다. 하지만 저강도 갈등은 여전하다. 더러 북한은 남한에 포격을 가하고 배를 침몰시키곤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렇게만 돼도 다행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입장에서는 두고 보는 편이 낫다(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한다). 러시아도 조만간 대선이다(2024년 3월). 푸틴 승리가 확실시된다. 지금도 이기고 있지만 더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그는 말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선거가 없을 공산이 크다. 계엄령 상태에서는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역시 남게 된다. 지금 상황이 2025년까지 계속될 것이다.”

-가자 전쟁은 어떻게 흘러갈까.

“가자지구 작전이 1년 내에 끝나는 게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어떤 목표가 달성됐을 때 이스라엘 정부가 작전이 성공했다고 선언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이스라엘의 대(對)하마스 전쟁 양상은 4, 5년이 걸린 데다 오늘날까지 ‘테러와의 전쟁’ 형태로 남아 있는 미국의 대이슬람국가(IS) 전쟁과 비슷할 것이다.”

-작전 성공이 끝이 아니라는 뜻인가.

“하마스는 타협 불가능한 테러리스트이고, 그래서 그들을 파괴하겠다는 이스라엘의 결정을 이해한다.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아주, 아주 야심 차다. 소탕 자체가 쉽지 않은 목표다. 게다가 방법에 의문이 생긴다. 지금처럼 가자를 파괴하는 식으로 목표 달성이 가능할까. 가자에 살고 있는 200만 명을 더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하마스 제거가 지난한 목표인 것은 그들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무차별 파괴가 배태한 원한·증오가 대원을 기른다. 얼마 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고강도 작전의 전략적 실패 가능성을 경고한 이유다.

앨리슨 교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박멸하려 레바논을 침공해 넉 달 가까이 점령했던 1982년을 상기시켰다. 당시 이스라엘은 레바논 점령이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철수했지만 이를 계기로 새로운 반(反)이스라엘 이슬람 시아파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가 부상했고 지금은 강력한 로켓 전력을 보유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앨리슨 교수는 “강공은 이스라엘이 모든 전선에서 거의 해결하기 불가능한 도전적 안보 문제에 직면하게 만들었다”고 짚었다.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로 확전도 거론된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골란고원과 서안, 레바논이나 요르단, 궁극적으로 이란과의 갈등으로 전이되거나 그것을 점화할 가능성이 분명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위험이다. 이란이 포함된 모든 반이스라엘 세력이 참전하게 된다면 미국이 그 전면전에 연루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수십 만명의 미군이 동원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다. 이란은 거대한 위험이다. 미국이 그 위험의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까닭이다.”

패권: 중국이 잡은 기회

-미국의 위상은 어떻게 변할까.

“미국은 아직 세계 최강대국이지만, 단극 체제는 깨졌다. 이미 유일 패권국이 아니다. 라이벌 중국이 계속 강력해지고 있는 데다, 러시아, 이란, 튀르키예, 인도 등 다른 많은 강대국이 제각기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물론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과는 질서 감소다. 가능성이 큰 미래다.”

-중국의 성장세도 예전만 못한 것 같은데.

“시진핑(중국 국가주석)은 2022년 사실상 평생 지도자 자리를 확보했다. 2035년, 나아가 그 이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몇 년이 아니라 수십 년 앞을 내다보는 게 가능한 배경이다. 중국이 거침없이 부상하고 미국은 불가역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자신의 웅장한 서사를 그는 철석같이 믿는다. 지금은 씨름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 코로나 대유행을 지나며 강해진 권위주의와 통제가 중국의 기민함을 약화시켰고, 부동산·수출 조합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소비·기술 기반 경제로의 이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실책이 소비자·기업의 신뢰를 훼손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세계관에서 중국은 역류할 리 없는 장강(長江)의 물결이다. 지난해 11월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중국과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5.2%와 2.4%다.

앨리슨 교수는 “현재 문제들이 당 장악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고, 경쟁국들의 두 배 속도 성장을 유지할 만큼의 투자면 충분하다고 시진핑은 믿는 것 같다”며 “미국이 내부 분열로 찢어졌다는 판단도 그가 중국의 미래를 낙관하는 근거”라고 진단했다.

-마침 중국이 주춤하기 시작할 때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쳐들어갔다.

“시진핑이 마뜩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는 안정을 바라고 대만을 귀속시켜야 하는 만큼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 그러나 자국에 쏠렸던 미국 관심이 우크라이나로 옮겨 가는 것은 중국에 무엇보다 큰 이익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가장 바라는 게 방치다. 독자적 경제 구축과 메이저 교역국 성장, 공급망 의존 유도 등 중국의 장기적 성공 도모에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은 금상첨화였다. 하늘이 내려 준 뜻밖의 선물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 더 깊숙이 개입될수록 시진핑에게는 이롭다. 9·11 테러(2001년) 이후 20년간 미국이 중동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매몰된 것은 중국에 행운이었다. 거대한 20년이었다. 그는 미국 정치가 아시아에 비해 중동, 이스라엘, 유럽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충돌: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마주 앉은 지 1년 만이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나 대만 같은 첨예한 갈등 이슈를 놓고는 두 정상 다 여전히 물러서지 않았지만 직통전화 가동과 군사 소통 채널 복원에 합의하며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두 사람 모두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양강의 무제한 전쟁이 한쪽만의 재앙이 아니라는 것은 둘 다 알고 있다. 사다리 끝은 핵전쟁이다. 거기서 양국은 스스로 파괴되지 않고는 상대방을 파괴할 수 없다. 핵전쟁에 승리가 없는 이유다. 문제는 배경 조건이다. 앞으로도 도전국 중국은 계속 부상할 것이다. 패권국 미국을 위협하면서 말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우발적) 사고나 (제3자에 의한) 사건이 두 나라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 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된 것처럼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서의 양측 작전을 둘러싼 충돌, 대만 독립 선언 등이 악순환을 촉발할지 모른다. 향후 10~20년간 미중 간 전쟁의 위험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한다.”

-2022년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 “미중 전쟁에 이르는 첩경은 대만을 통과하는 길”이라고 쓰신 적이 있다. 2024년 1월 선거에서 반(反)중국 총통이 선출될 공산이 크다. 아슬아슬하다.

“대만은 미중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발화점이다. 대만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근본적으로 타협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만이 중국에 완전히 통합돼야 하며 중국 규칙에 의해 통치돼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 미국은 시장주의 민주 국가로 자리잡은 대만에서 번영을 누리는 2,300만 명에게 같은 삶을 계속 영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타협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는 사실이 그 차이가 관리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길을 터준 이가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1923~2023)다. (1972년) 중국 개방과 ‘상하이 코뮈니케(공동선언)’ 도출은 그의 걸출한 업적이다. 그가 만든 ‘전략적 모호함’이라는 틀 덕에 50년간 차이가 관리될 수 있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게 가능하냐다.”

앨리슨 교수가 우려하는 것은 경쟁(rivalry)의 격화다. 강경해지다 보면 충돌 가능성이 커지게 마련이다. 상대방이 물러서기를 바라며 무모하게 돌진하는 ‘치킨 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 중국은 지금보다 강해질 것이고, 지도부가 누구이건 대만 독립을 받아들이느니 전쟁을 택하리라는 게 앨리슨 교수 예상이다. 물론 대만도 성장을 지속할 것이다.

앨리슨 교수는 “중국이 도발하거나 (라이칭더 민주진보당 부총통이 당선될 경우) 대만 신임 총통이 국민 투표로 독립 선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서는 시나리오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국도 이제 대선 국면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이미 전략적 모호성 개념이 많이 약해졌다. 그 와중에 ‘중국 때리기’ 경쟁도 더 심해질 듯하다.

“다행히 통과되지 않았지만, 대만을 (한국과 같은 수준인) 비(非)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 동맹국으로 지정하려는 법안이 2022년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 로버트 메넨데스(민주당·뉴저지주) 의원과 린지 그레이엄(공화당·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원에 의해 초당적으로 발의됐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바이든·시진핑 둘 다 미중이 싸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인가가 (우연히) 일어나고 다시 다른 뭔가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나가 다른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금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에 사람들이 놓이게 되는 것이다.

사소했을 일들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는 것은 오인(misperceptions), 오산(miscalculations), 오판(misjudgments) 탓이다.

가령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 그랬다. 그의 사라예보행을 신하들이 말릴 때만 해도 역사학자들이 ‘세계대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전쟁 유형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의 파괴적인 대화재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잘못을 방치한 결과, 불과 5주 뒤 온 유럽을 전쟁이 덮쳤다. 그 과정에서 돌출 행동과 우연이 겹쳤다. 믿기 힘들지만 1914년에 실제 일어난 일이다. 그런 불행한 사태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한국: 미국에도 할 말은 하라

세계는 다시 쪼개졌고, 두 개의 전쟁으로 여파가 드러났다. 미중 충돌 가능성도 확대일로다. 이는 예외 없이 모든 나라에 구조적 도전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윤석열 정부에 제언한다면.

“2차 세계대전 종전(1945년) 이후 78년간의 장기 평화는 수천년 역사에서 본 적 없는 이례적이고 놀라운 성취였다. 그 환경에서 우리가 번영했다.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아시아 지도자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다. 더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안보 이익을 지켜야 한다.

아시아가 공유하는 이해관계에 대해 아시아인이 더 강경하게 의견을 밝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가 공유하는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함께 발언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세계가 다극이라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두 행위자다. 많은 행위자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한국은 중요한 행위자로 성장했다. 미국과 한국의 협업은 성공적이었다. 자유주의의 우월성을 세계에 잘 소개한 ‘쇼케이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짚어야 할 게 있다. 많은 위험 요소가 있고, 위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주저하지 말고 자신 있게 말하라”며 대상으로 세 나라를 찍었다.

우선 대만이다. 한국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독립된 대만은 없어. 인정하지 못해.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어. 바이 바이.”

마찬가지로 중국에도 경고할 필요가 있다. “당신들이 대만에 맞서 군사력을 사용하는 식으로 현상 변경을 시도하려면 중국과 한국 간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각오를 해야 할 거야.”

물론 미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한다. 1977년 1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원회에 주한미군 철수를 검토할 것을 지시한 일이 있다. 예컨대 이제 그런 일이 반복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앨리슨 교수 조언이다. 대만 관련해서도 독립 지지라든지 중국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자제하라고 단속해야 한다.

앨리슨 교수는 이렇게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지금껏 우리가 누려 온 국제 질서의 붕괴를 막으려면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합니다.”

지난달 18일 북한이 ICBM을 쐈다. 앨리슨 교수에게 이메일로 추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이 2022년 이후 ICBM 13발과 군사 정찰위성 3기를 포함해 10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반도도 심상치 않다.

“안타깝게도 앞으로 1년간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공산이 크다. 김정은의 핵 프로그램이 진전되고, 한미 양국은 한국과 아시아의 미군기지, 나아가 미국 본토를 겨냥한 그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방어하기 위한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가 뜨겁게 달굴 2024년 미국 대선도 악재다.”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국가 안보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출신 정치학자다. 핵무기와 러시아·중국, 정책 결정이 관심 영역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더글러스 딜런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대학에서만 약 50년간 가르쳤다. 1977~89년 케네디스쿨 학장, 1995~2017년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장관 특별보좌관,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로 각각 발탁돼 공직도 경험했다.

2018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2012년 앨리슨 교수가 처음 쓴 표현이다. 패권국과 도전국 간 전쟁의 원인이 되는 구조적 긴장을 뜻한다.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패권국)와 아테네(도전국)가 맞붙어 일어난 펠로폰네소스전쟁의 배경을 저 틀로 설명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이름을 빌렸다. 미국과 중국 간 충돌 가능성을 경고한 앨리슨 교수의 2017년 역저 ‘예정된 전쟁’을 통해 저자와 함께 일반 대중에게까지 유명해졌다.

1940년 3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났고, 84세 생일을 앞두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경제학 석사,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분석한 첫 저서 ‘결정의 본질’(1971)로 학계 명성을 얻었다.

케임브리지(미국)= 권경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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