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장만 쓴다고 모든 상속 분쟁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유언장을 '잘 쓰는 게' 중요합니다. 대충 써버린 유언장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죠."
일본에서 만난 대다수 상속 전문가들은 가족 간 분쟁을 막기 위해선 유언장 작성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상속 관련 법 체계가 비슷하고, 우리보다 앞서 상속 분쟁으로 홍역을 치렀다. 지난해 말 만난 쓰네오카 후미코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 국제대학원 법학과 교수는 "유언장 작성의 핵심은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유언장을 작성했더라도, 한 자녀에게 재산을 몰아주면 사후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0년간 가족법을 연구한 쓰네오카 교수는 2001년부터 도쿄가정법원 중재위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부터 지난해까진 일본 법무성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의 위원을 맡았다.
그렇다면 잘 쓴 유언장은 어떤 것일까. 물려받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공평하게 나눠줬다는 기분이 들어야 한다. 특정인에게 재산을 너무 많이 남기면 유류분 청구 소송 등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쓰네오카 교수는 "대체로 법정 상속 비율과는 다르게 재산을 나눠주고 싶을 때 유언장을 작성한다"며 "장남에게 재산을 많이 주는 등 일본에서도 형제간 차별적 요소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속 분쟁의 원인으로 지목된 유류분 제도 폐지에 대해선 섣부르다고 봤다. 모든 사람이 배우자나 자식을 공평하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최소한의 상속은 받아야 한다는 게 일본 사회 분위기라고 전했다. 쓰네오카 교수는 "유언의 자유와 유류분 제도가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부모에게 폭력을 쓰면 상속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안전장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쓰네오카 교수는 일본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 유언장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정부가 디지털화 의지가 강해서 법제화될 것 같다"며 "어린 세대는 종이보다는 디지털에 익숙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사용할 게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유언장 조작이나 변조를 막기 위한 대책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쓰네오카 교수는 "통상적인 전자문서는 위조돼도 상대방이 알아챌 수 있지만, 유언장은 고인이 사망했기에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유언은 다른 계약서를 디지털화하는 것보다 훨씬 꼼꼼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네오카 교수는 혈연주의에 기반해 만들어진 민법을 보완하는 차원에서라도 유언장 활용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법이 혈연만으로 법정 상속인을 정한 이유는, 유언장 없이 사망한 경우 가족에게 물려주는 게 가장 뒷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만약 간병인 등 법적 상속인이 아닌 사람에게 재산을 주고 싶다면 유언장을 활용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는 신청 한 번으로 고인의 재산 내역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의 원스톱안심상속조회 시스템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쓰네오카 교수는 "일본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며 "고인의 재산 목록을 확인하기 위해선 일일이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기관을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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