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가 시작부터 대통령실과 관계 설정의 기로에 섰다. 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을 둘러싼 딜레마 때문이다. 대통령실 입장대로 특검법을 전면 거부할 경우 '윤심(尹心)'에 갇혀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과 협상 여지를 열어두는 건 대통령실 및 국민의힘 주류와 등을 돌리는 일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5일 "특검법이 총선을 앞둔 흠집내기용이고 헌법상 문제가 있다는 건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날 이관섭 정책실장이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총선을 겨냥해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 아니냐는 생각을 (대통령실은)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대통령실은 특검 거부가 '가이드라인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이미 당과 대통령실이 공유해온 원론적 입장일 뿐이고, 비대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지명자가 19일 '특검법은 악법'이라고 독소조항을 지적하면서 법시행 '시점'을 문제삼자 이를 놓고 '총선 후 특검'을 조건부로 수용하는 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특검법의 문제를 제기한 이 실장의 발언은 파장이 작지 않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간 윤 대통령이 수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법안이 국회에서 정부로 넘어오기 전까지는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번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실의 반감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복수의 대통령실 참모는 윤 대통령이 조건부 수용안에 대해 불쾌해했다는 전언에 대해선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조건부 수용을 누가 제안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비대위 개입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지만, '원천 거부' 외 다른 선택지에 대해선 부정적 기류가 상당한 셈이다. 이날 한덕수 총리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비공개 당정협의를 갖고 '조건부 수용' 역시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은 한동훈 비대위로 넘어왔다. 특검법은 재적의석 과반 출석, 출석 과반 찬성이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때문에 민주당 자력으로 충분하다. 문제는 여당의 대응이다. 야당 공세에 강경하게 맞서는 것 외에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 혁신의 우선과제로 '수직적' 당정관계를 극복해야 하는데, 대통령실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면 비대위의 입지는 좁아지기 마련이다. 당정대가 '원천 수용 불가' 입장을 재확인한 만큼 선택의 폭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당내 분위기도 격앙돼 있다. 국민의힘 원내 핵심 관계자는 "비판을 받더라도 말도 안 되는 법안을 받을 순 없다"며 "그랬다가는 계속해서 말이 안 되는 걸 되는 것처럼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과 합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친윤계' 이철규 의원도 페이스북에 "총선에 악용하기 위해 다수 의석에 의한 의회 폭거가 더 이상 용납돼선 안 된다"며 날선 반응을 보였다.
다만 한동훈 비대위가 이 같은 여권 기류에 묻어갈 경우 출범 초기부터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과 마주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총선을 치르고 나서 새로운 특검법안을 마련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총선용 흠집내기'라는 대통령실 및 당내 비판과 배치되지 않고, 한동훈 비대위도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특검 시기나 독소조항을 떠나 특검을 할 만한 사안이 아닌데 정쟁용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기류가 강하다"며 타협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도 "국민의힘이 제시한 조건을 들으며 협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당 입장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맞섰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특검법을 거부하는 대신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설치를 역제안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민주당이 수용하기에 매력적인 카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