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당면한 최대 난제로 꼽히는 재판 지연. 각급 법원의 재판 진행 속도를 높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판사 수 늘리기'지만, 법관 정원 확대는 다름 아닌 '검사 정원 확대'란 돌발 변수에 발목이 잡혀 였다. 판사정원법(정원 370명 증원)·검사정원법(220명 증원) 개정안이 각각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검찰 공화국'을 우려한 야당이 검사 증원을 문제 삼으며 법관 증원 문제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5일 기준 법관 정원은 3,214명이고 현원이 3,192명이라, 현재 결원은 22명이다. 대법관회의 임명 동의를 앞둔 전담 법관 3명을 제외하면 결원은 19명으로 준다. 지금 법관 인원은 법적인 정원을 거의 꽉 채운 상태라서, 법을 바꾸지 않으면 법관 증원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다른 공무원과 달리 법관과 검사의 증원은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과 '검사정원법'(2,292명)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문제는 법관 증원이 외부 변수인 검사 증원 문제 탓에 막혀 있다는 점이다. 야당은 법관 정원만 늘리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여당은 법관·판사 정원을 함께 늘리자고 한다. 올해 7월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회의록을 보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당도 재판 지연을 말하지 않느냐"며 "판사 정원이 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데 이견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은 "형사재판부가 증설되면 검사 정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맞받았다. 법원·검찰청의 조직은 항상 대등하게 짜여야 하기 때문에, 한쪽이 늘면 다른 쪽도 늘려야 한다는 논리다.
법무부 역시 법관(재판부)이 늘면 공판 업무 자체가 늘어나 검사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은 법사위 회의에서 "법원과 검찰 업무는 서로 긴밀히 연계됐다"고 양 정원 증원 필요성을 호소했다. 실제 1995년 이후 다섯 차례 이뤄진 판·검사 증원 모두 업무 연계성을 이유로 함께 추진됐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판사 수가 늘면 형사재판부가 늘고, 이때 검사 증원이 병행되지 않으면 공소유지에 부담이 갈 것은 자명하다"고 짚었다. 현재 공판검사 1명이 평균 1.7개의 재판부를 담당해 주 4~5일 정도 공판에 나가는데, 법관 증원으로 형사재판부가 신설되면 검사의 부담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증원 검사 220명의 예상 배치를 담은 설명자료도 국회에 제출했다. △공판중심주의 강화(82명) 및 형사재판부 증설에 따른 공판검사(57명) 등에 139명 △범죄수익환수·피해자지원전담 검사 28명 △차치지청(차장검사가 배치된 지청) 내 인권전담 검사 20명 △2025년 3월 인천지검 북부지청 개청 및 휴직자 공백 해소를 위한 검사 33명 등이다. 야당이 우려하는 특별수사 부서 강화는 없을 것이란 취지다.
하지만 국회 논의는 올해 7월 이후 멈췄다. 또 야당은 "검사 증원을 하려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도 증원하자"는 요구까지 얹고 있어, 판검사 증원은 공수처 무용론(수사 능력 부족)과도 얽혀 있는 상태다.
법원은 "여야 이견이 없는 만큼 법관 증원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정원도 문제지만, 2025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되기 때문에 더욱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앞서 2018년 최소 법조경력이 3년에서 5년으로 상향된 직후 2년 동안 임관한 법관 수가 급감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조경력 '7년'은 변호사로 충분히 자리 잡을 만한 기간이라 판사 지원 유인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대형 로펌 변호사 7년 차면 자리를 잡을 시기라 굳이 판사로 들어와 배석부터 시작하려는 인재들이 있을까 싶다"며 우려했다.
법관 증원이 불투명해지면서 재판 지연 문제는 더 악화할 전망이다.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 사건(1심 기준) 처리 기간은 2021년 364.1일에서 지난해 420.1일로 증가했다. 형사합의 1심(불구속 기준) 처리 기간도 217일에서 223.7일로 증가했다. 수도권 지역 한 부장판사는 "재판 지연이 심각한 문제란 공통된 인식이 있는 데다 양질의 재판, 심리의 충실도 등 재판 역량 강화 측면에서도 법관 정원 확보는 우선돼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