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에서 21일 개막한 미디어 융복합 전시 '디어 바바뇨냐: 해항도시 속 혼합문화'(내년 6월 16일까지). 전시장 입구를 통과하면 거대한 함선의 뱃머리 모양 구조물이 나타난다. 양옆에 설치된 너비 48m, 높이 9.6m의 스크린에서 미디어아트로 재현된 파도가 철썩철썩 밀려온다. 이윽고 정향 냄새. 검은 테이블 위에 피라미드 형태의 황금빛 강황가루가 쌓여 있다. 오마 스페이스의 설치미술 작품 '황금빛 여정'으로, 후추의 원산지이자 인도의 항구도시인 코치를 형상화했다.
조금 더 걸으면 달빛이 비치는 호수에 당도한다. 동서 교역의 길목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말라카의 역동성을 담은 송창애의 설치 작품 'WATER ODDYSSEY:물길'이다.
마지막 공간은 마르코 폴로가 '세상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라 극찬한 중국 취안저우를 형상화한 박근호의 설치 작품 '무역감정'이다. 과거 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교류된 물품을 골라 테이블에 올리면 물건마다 다른 형태로 빛나는 인터랙티브 키네틱(움직임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이 펼쳐진다.
'바바뇨냐'는 중국에서 말레이시아로 이주한 남성과 말레이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남성(baba)과 여성(nyonya)을 합친 말로, 혼합문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영상 작품과 관객참여형 설치미술이 어우러진 전시관은 아시아 해양도시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느끼게 해준다.
전당은 건축 전시 '이음 지음', 현대미술 전시 '가이아의 도시'도 함께 공개했다. 전시장 3곳의 면적이 5,235㎡(1,583평)에 이르기에 충분한 시간과 체력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이음 지음' 전시(내년 7월 21일까지) 초입에는 56개의 자전거 바퀴를 이어 만든 거대한 설치물 '무한차륜'이 놓여 있다. 페달은 단 한 쌍. 한 사람이 발을 굴리면 연결된 바퀴들이 일제히 돌아간다. "일본에서 가져온 자전거 바퀴와 광주에서 모은 바퀴가 모여 한 사람의 인력으로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두가 함께 움직일 때 건강한 활력을 얻을 수 있는 사회를 표현했다."(고이치로 아즈마 작가)
'이음 지음'에 나온 19개의 작품은 재료가 서로 닿고 이어지고 쌓여서 완성되는 건축처럼 도시 속의 삶도 서로 연결되기에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가이아의 도시'(내년 2월 25일까지)는 자연과 인간의 대립, 그로 인한 기후위기 등 아시아가 직면한 문제들을 주제로 삼았다. 노경택의 '이중협력시퀀스'를 보자. 푸른 식물에 센서가 달려 있다. 식물이 보내는 보이지 않는 신호에 따라 타악기인 마림바가 연주된다. 다른 식물이 보내는 신호는 비눗방울을 제각각의 방향으로 날린다. 식물과 자연이 수동적인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