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고 줄여도 물가 못 이겨"... 결국 문 닫는 배달 1위 '동네 맛집'

입력
2023.12.26 11:00
5면
[고통의 물·리·집] <1> 물가
커피 재룟값 뛰었는데 손님은 줄어
가격 못 올리고 마진 줄이다 "폐업"
"물가 관리? 시장경제인데 가능할까"

편집자주

물가, 금리, 집값 때문에 힘든 한 해를 보낸 서민들의 일상을 동행해 그들의 애환과 내년 바람을 담았습니다. 아울러 각 사안의 내년 전망도 전합니다.


"요즘 겨울인 줄도 모르게 따뜻했잖아. 근데 사람이 더 없어. 폭염 때보다 장사가 더 안 돼."

12일 오전 서울 강동구 명일전통시장. 60대 상인의 푸념을 뒤로하고 카페 '엔메르'에 다다랐다. 시장통은 적막하지만, 막 점심 장사를 시작한 카페는 커피콩 가는 소리로 요란하다. 들어오는 주문 따라 사장 이건수(34)씨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동안 우유를 데우고, 얼음을 퍼 올리고, 출입문 풍경이 '딸랑'대고 배달기사가 음식을 가지고 나간다. 소리가 끊기려는 찰나 '딩동'. 다시 주문이다.

이렇게나 분주한데, 이씨는 가게를 내놓았다. 폐업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평지풍파에서도 배달이라는 활로를 찾아 3억 원 가까운 매출을 내던 그다. 가게가 입소문을 타면서 2년간 강동구 배달횟수 1등(A 배달업체 기준)을 차지했고, 여전히 '동네 카페 치고는' 매출이 잘 나오는 편이다.

그럼에도 폐업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물가다. 고물가로 재룟값이 대폭 뛰었고, 고물가로 지갑을 닫는 손님이 늘어났다. 매출은 줄고 비용은 상승하면서 마진 구간은 매출의 20%에서 10% 수준으로 좁아졌다. 대출 낀 건물에서 장사하는 탓에 최근 월세도 5% 올랐다.

"작년엔 서서히 올랐는데... 올해는 우후죽순"

고물가를 본격 체감한 건 올해 초부터다. 작년만 해도 하나가 오르면 다른 비용을 줄여 대안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커피, 우유, 종이컵 등 모든 게 한꺼번에 우후죽순처럼 올라 제어가 안 됐다"고 한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유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지난해 11월 0.1%에 불과했지만, 올해 11월은 15.9%에 달한다. 커피 역시 8.3%에서 11.6%로 올해 오름폭이 더 크다.

그는 "카페는 점심 한때 장사인데 마침 피크 타임 초입에 오셨다. 특히 저녁 손님이 진짜 없다. 경제적 여력도 없겠지만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바뀐 것 같다. 건너편 먹자골목도 전보다 휑하다"며 매출이 반토막 난 사연을 설명했다.

고물가에 대응하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 보안업체 계약을 해지했고, 포장 비닐을 저렴한 것으로 바꾸는 등 고정비에서 줄일 수 있는 건 최대한 줄였다. '어차피 전기료만 나갈 것'이라 생각해 오후 11시까지 열었던 가게 문을 이제 6시면 닫는다. 올해부터는 직원 없이 혼자 일한다.

"슈링크플레이션? 먹는 걸로 장난칠 수 없어"

그럼에도 가격은 올리지 않았다. 반경 200m 내 저가 프랜차이즈 카페 4곳이 있어 가격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양을 줄이거나 값싼 재료로 바꾸지도 않았다. "양이나 질로 장난치면 고객이 금방 알아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뚝심은 고물가 앞에서 점점 수그러든다. "우리 정도의 라테를 3,000원(테이크아웃 기준)에 서울에서 먹을 수 있는 데는 10곳도 안 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장사랑 상관이 없더라. 알아주면 감사한 건데…"

물가 관리 담당관제를 두거나 공공요금 분할 납부제를 시행하는 등 자영업자를 위한 고물가 정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는 회의적이다. "분납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것 같고, 자유경제시장에서 물가 관리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자 캐시백' 같은 금전 지원에 대해선 "부실을 막으려는 건 알겠는데, 아픈 데를 도려내야 하는 건 아닌지… '희망의 끈'만 못 놓게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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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윤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