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논란을 빚었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이 국회 심사를 거쳐 26조5,000억 원 규모로 21일 확정됐다. 신진 연구자 인건비 감소 등 지적이 쏟아졌던 부분을 중심으로 6,217억 원가량 증액한 결과다. 하지만 올해 예산과 비교하면 감축 폭은 4조6,000억 원가량으로 여전히 큰 상황이라 연구 현장의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R&D 예산 증액분은 갑작스러운 연구비 삭감으로 짙어진 고용 불안 우려를 해소하는 데 투입된다. 먼저 정부는 박사후연구원(포닥)들의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집단연구사업을 450억 원 규모로 신설했다. 또 100억 원을 들여 우수한 이공계 석·박사과정생 100명 내외를 지원하는 '대학원 대통령과학장학금'을 신설하고, 연구장려금을 확대해 900명을 더 지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현장에서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계속과제 예산을 1,430억 원 증액하고, 수월성 있는 소규모 연구를 지원하는 창의연구사업(98억 원)을 새로 만들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해서도 인건비 중심으로 388억 원을 확충했다.
과기정통부는 "대학의 안정적 연구 수행을 위한 재원 확충과 함께, 기존 대학 등이 보유한 학생인건비 적립금 활용도 적극 권고할 계획"이라며 "학교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인건비 지급을 보장하는 기관 단위의 통합 관리도 확대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기업 R&D 지원 1,782억 원 △차세대·원천기술 개발 336억 원 △첨단 연구장비 구축·운영 434억 원이 늘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무작정 덩치만 키워 비판을 받았던 글로벌 R&D 예산은 정부안 대비 39억 원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1조8,000억 원이라는 거대한 규모는 유지하게 됐다. 정부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주된 쟁점이 됐던 글로벌 R&D 예산은 대부분 정부안에 따라 확정돼 세계 최고 수준의 R&D 추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정은 현장에서 터져 나온 불만을 달래기 위한 용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증액 규모가 삭감 폭에 비해 턱없이 적고, 합리적인 결정 과정이 생략됐다는 점에서 비판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과학자는 "여야가 정치적으로 얻어갈 만한 것들을 밀실 조정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면서 "우리의 미래가 달린 R&D마저도 정쟁의 도구에서 못 벗어났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