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 과학 이야기, 더 많이 들려드릴게요" [인터뷰]

입력
2023.12.3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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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작]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김동광·김명진씨

"좋은 책을 만나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번역부터 하고 있는 거죠. 그게 쭉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다행이죠. 요즘은 'STS'라고만 해도 '과학사회학'이라고 다 알아들으니까요." (김동광)

"어떤 사명감이 있다고까지 말하기엔 너무 거창하고요. 혼자 보기 아까운 자료들이 많아서요. 그걸 번역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아요." (김명진)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수상작은 영국 과학기술학자 존 에이거의 책을 번역한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다. 번역 부문은 번역 그 자체의 정확성과 유려함도 따지지만, 번역본의 가치, 번역자의 번역에 대한 그간의 공헌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김동광(66) 전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원, 김명진(52) 한국항공대 강사와 이 책은 이 모든 요소를 충족한다.

과학발전을 추동한 건 냉전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는 과학의 발달은 천재 과학자의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실제 문제를 해결하려다 이뤄졌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20세기 과학사는 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인데, 그걸 '실행세계(Working World)'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이 책을 처음 발견한 건 10여 년 전 김 강사. 김 전 연구원에게 같이 읽자고 했다가 결국 번역까지 했다. "세계대전과 냉전이 관련되다 보니 군사기밀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관련 자료들이 최근 하나둘씩 기밀해제되면서 연구가 풍부해지고 있거든요. 그걸 핵심을 딱딱 짚어가며 정리해서 보여준다는 게 이 책의 가치예요."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번역에 대한 헌신 부분도 그렇다. 두 사람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손사래 쳤지만, 김 전 연구원은 1990년대부터 과학사회학계의 유명 번역자이자 저자였다. 저 멀리 GMO(유전자변형식품) 논란부터 황우석 사태 등을 거치면서 그의 글이나 책을 어떤 방식으로든 참조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김 강사 역시 STS 관련 글들이 아직은 너무나 흥미로운 게 많아 번역하고 소개하는 것만 해도 즐겁다. 두 사람이 공동작업한 것만도 4, 5권이 넘어간다.

번역의 수준에 대해서는 '원문 대비 가장 우수한 번역'이라는 심사위원 찬사가 있었다. 번역에 대한 열의, 오랜 노하우 덕분이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김 전 연구원은 일본 사례를 들었다. "일본만 해도 과학계와 협의를 거쳐서 출판사마다 용어사전 같은 게 있어요. 그 사전을 참조해서 번역을 진행하니 큰 걸림돌이 없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습니다. 인터넷 검색 덕분에 요즘 나아지긴 했는데, 아쉬운 부분이죠."

'냉전과학모임' 발족 ... 한국 과학사 밝힐 것

이 책의 번역은 또 다른 모임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 방학 때 딱 6번 모이고 헤어졌거든요. 그런데 기밀해제에 따른 자료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앞으로 더 흥미로운 연구가 나오겠구나 해서 아예 '냉전과학모임'이란 걸 만들었어요. 우리 둘만 아니라 이 시기 과학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해서 지금 6, 7명이 함께 공부합니다."

자료 찾고 번역하고 공유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세미나만 해도 100번 이상 진행했다. 최근엔 미국에서 '미사일 방어' 개념이 어떻게 생겨나고 적용됐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 모임의 방향을 정해둔 것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국은 냉전이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라는 점에서 우리에 대한 이해도 깊게 해줄 겁니다."

조태성 선임기자
문이림 인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