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책을 읽으면서 빈곤을 너무 낯설게 가져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쉽게 가져가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일보사가 주최한 제64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인 '빈곤 과정'을 쓴 조문영(48)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22년간 빈곤 문제에 천착했다. 서울 난곡지역 빈곤 연구로 서울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중국 둥베이 지방 노동자 계급의 빈곤화 과정 연구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 논문을 썼다. '빈곤 과정'은 그의 논문들에 한국 사회의 현재적 관점을 투사해 빈곤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이해 방식을 꼼꼼하게 톺은 책이다.
책은 빈곤에 대한 획일적 경계짓기를 경계한다. 빈곤의 전형으로 취급받는 도시 빈민, 공장 노동자, 복지수급자 등과 함께 상대적 결핍과 불안정을 호소하는 20대 프레카리아트(고용 상황이 불안정한 노동무산계급)가 책에 등장한다. 중국의 폭스콘 노동자, 폐품 수집 농민공, 중국 선양의 한국인 이주자 등의 인터뷰를 통해 국경을 넘어 빈곤을 사유할 기회를 준다. 이주자, 여성, 토착민, 노예, 역사 이전부터 착취당해 온 존재들까지 다양한 빈곤의 사례를 다뤄 빈곤의 외연을 확장시킨다. 이어 우리 시대의 빈곤을 어디로 가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책은 학술서로 분류되지만 빈곤을 사유하려는 독자들을 위한 교양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에 학술서로는 이례적으로 4쇄를 찍었다. 조 교수는 이른바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에서 10년간 '빈곤의 인류학'을 강의하며 학생들이 빈곤을 마주할 경험이 거의 없어 낯설어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강의와 저술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빈곤이라는 주제에 쉽게 덤빌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경계짓기를 거부한 조 교수는 책이 월경의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 그의 수업을 듣고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거나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지원 활동을 하는 일부 학생들처럼 말이다.
"학계에서만 보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좁은 학계를 대상으로 대학교수라는 위치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교양서, 학술서, 중국 연구, 한국 연구, 빈곤 연구, 청년 연구 식으로 분류되는 정형화된 틀을 깨고 싶었습니다."
책을 쓸 수 있었던 건 가족의 힘 덕분이었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그의 형부는 노들장애인야학 공동교장이고, 언니도 오랫동안 야학을 지켰다. '빈곤 과정'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2018년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더 취약해지는 이들을 보면서 "정규직 교수인 내게 빈곤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를 고민하느라 주저했다. 지난해 아버지가 코로나19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쓰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동력 삼아 다시 쓰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야학 교사 활동을 하신 아버지는 제 연구를 늘 지지해주셨어요. 어머니는 제 연구 주제를 그리 반기진 않으셨는데요, 시상식에 꼭 어머니를 모시고 가고 싶습니다. 제 책에 대한 세상의 평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