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종종 ‘다이어트 자극짤’이라고 불리는 마르고 예쁜 여자 사진을 만난다. 그것은 선망과 죄책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나는 옛날부터 그런 자극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뭐든 집어먹고 싶어지곤 했다. 분명 모종의 방어기제였다. 나는 내 몸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혹은 죽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영역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누구든 나를 고평가하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절실하게, 아름다운 사람의 세계로 가고 싶었다. 아밀의 장편소설 ‘너라는 이름의 숲’을 읽는 동안 그때의 강렬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작품 속 ‘리얼 아이돌’에게는 잔혹한 기준이 적용된다. 가상현실에서 외모를 보정하는 경우가 보편화한 탓이다. 가상세계에서는 누구나 쉽게 아름답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버추얼 아이돌’은 더욱 아름답다. 버추얼 아이돌과 경쟁하려면 아이돌의 ‘진짜 몸’은 완벽해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 중 ‘이채’는 극심한 강박에 시달린다. 그녀는 히트곡을 낸 리얼 아이돌이다. 이채는 마구 먹다 토하는 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이돌은 “누가 어디서 맨눈으로 목격하더라도 예쁘다고 말할 만한 진짜 미인이어야 한다.”
아예 안 먹을 수는 없다. 팬들은 이채가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작품 속 세계에선 환경오염으로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채의 팬들은 이채가 제대로 요리된 진짜 음식을 누리길 바란다. 맛있게 먹으라며 자기 일처럼 행복해한다. 사랑이다. 그러나 이채가 살이 찌면 그 사랑은 수그러들 것이다. 이채를 둘러싼 사랑에는 이중적인 메시지가 들어 있다. 풍족하게 먹되 몸매는 완벽해야 해. 매력적이어야 하지만 ‘창녀’는 안 돼. 자신을 진솔하게 노출하되 진짜로 솔직하진 마.
진짜 음식, 진짜 몸, 진짜 만남. 가상현실이 매끄럽게 감싼 세계에서 사람들은 진짜에 열광한다. 그래도 진정으로 울퉁불퉁한 민낯을 원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감염병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타인과의 접촉은 위험하다. 이채는 촬영 때문에 방문한 서울에서 고역을 치른다. 소설 속 서울은 대도시가 아니라 황폐해진 게토이며, 지나치게 날것이다. 하지만 서울에는 날것의 진심으로 이채를 사랑하는 ‘정숲’이 있다. 감염병 후유증으로 가상현실에 접속하지 못하는, 이채의 이미지를 보기보다 노래를 듣는, 이채에게 ‘아름답다’가 아니라 ‘강하다’고 감탄하는 소녀다. 이채와 정숲의 첫 키스는 더없이 충격적이다.
소설에는 여자 아이돌을 사랑하는 여성 팬의 복잡한 심경이 가득하다. 그들은 자신의 관심이 선망으로 얼룩진 괴롭힘으로 작용할까 우려하면서도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 진짜 진심, 진짜 사랑은 아이돌을 진짜로 지탱할지도 모른다. 소설은 아이돌 산업의 구조가 바뀌는 지경까지는 가지 않는다. 그래도 이채의 노래 제목은 ‘너라는 이름의 숲’으로 바뀐다. 이채는 죽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다른 여자들도 자신을 죽이지 않기를 바란다. 수많은 진짜들 중에서도 반짝이는 진짜를 만나서, 진짜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