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주요국처럼 한국도 금리인하 논의에 돌입할 것이란 기대에 선을 그었다. "물가 상승률을 목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라스트 마일(last mile·도착지까지 최종 구간)'도 지금까지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 총재는 20일 열린 '2023년 하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히 우리 물가 상승률이 더 높다고 해서 (금리를) 더 빨리 올리고 (물가 상승률이 낮다고 해서) 더 빨리 낮춰야 하는 건 아니다. 이자율 구조 등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이 4.0%(11월 기준)인 미국은 금리인하 얘기가 나오는데, 2.9%인 한국은 왜 못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미국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커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기존 대출을 중심으로 고금리 효과가 지속되는 반면, 변동금리가 많은 한국은 금리인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 물가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3일(현지시간) 마지막 회의에서 내년 세 번의 금리인하를 예고했다.
이 총재는 또 "유가가 올라간 것을 얼마나 많이 물가에 반영했는지"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에너지 비용 상승을 전기·가스 요금에 뒤늦게 반영한 탓에 물가가 더디게 하락하는 측면도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재는 "점도표(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점으로 나타낸 도표) 대비 시장이 과잉 반응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봐야 한다"며 시장의 지나친 낙관론에도 선을 그었다. FOMC 이후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글로벌 투자심리가 급격히 되살아났고, 그 영향으로 코스피는 이날 1.8% 상승해 3개월 만에 2,600선을 회복했다.
그는 "'금리를 올리지 않더라도 현 수준을 오래 유지하면 상당히 긴축적인 효과를 가질 것'이라는 게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언급에 대한 제 해석"이라며 "시장이 생각하는 것만큼 파월 입장이 크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환율 등 해외 요인이 안정돼 국내 상황만을 보면서 통화정책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봤다.
이날 한은은 "물가가 목표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수치상으로는 얼마 안 남았지만(1.3%포인트),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화 둔화를 주도했던 원자재 가격 예측이 어렵고 △물가에 영향을 주는 기대 인플레이션율과 △단위 노동 비용(생산성을 감안한 노동 비용)이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내년 말이나 2025년 초 물가 상승률 목표 2%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