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경복궁 낙서’

입력
2023.12.19 17:3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주말 경복궁 담장 일부가 스프레이 낙서로 뒤덮이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엔 ‘모방범죄’도 일어났다. 영추문 왼쪽 담벼락에 길이 3m, 높이 1.8m 규모로 붉은색 스프레이를 이용해 특정 가수와 앨범 이름을 쓴 것이다. 문화재청이 복구작업 중인데 일주일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스팀세척기와 약물로 오염물질을 제거한 뒤 레이저로 표면을 태워 흔적을 지우는 방식이다.

□ 경복궁의 수난은 익숙하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조선의 얼이 담긴 이곳 건축물들을 철거하고 파괴했다. 1910년 공원화해 전각 4,000여 칸을 경매하거나 헐어버렸다. 박람회장으로 하대한 게 대표적이다.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했고 120만 명이 다녀갔다. 전시공간을 확보한다며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 흥례문을 헐었고 자선당이나 비현각을 매각했다. 박람회를 20여 차례 열어 일본식 ‘유원지’로 삼은 것이다. 팔려나간 건물은 일본인들이 가는 요정과 재력가의 집으로 전락했다.

□ 조선의 정궁을 짓밟아 조선왕조가 끝났음을 알리는 효과가 컸다. 괴리된 공간을 일반에 돌려줌으로써 총독부가 백성을 더 위한다는 선전 목적도 있었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각종 행사를 벌여 문명을 밝혀주는 새 시대가 왔음을 세뇌시킨 것이다. 공진회의 경우 야간개장으로 경회루와 광화문 첨탑에 조명을 달아 신기술을 선보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치욕의 역사를 딛고 경복궁은 화사한 한복차림의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낙서 만행이라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 많은 사람들이 숭례문(남대문) 화재를 떠올리고 있다. 2008년 2월 한국을 상징하는 역사건축물이자 현존 최대 규모의 성문이 불타면서 국민 마음도 까맣게 태웠다. 6·25전쟁 때 폭격에도 살아남은 ‘국보1호’가 방화범의 화풀이 대상이 돼 허무하게 무너진 것이다. 그 10년 뒤엔 한 40대가 ‘보물1호’ 흥인지문(동대문)에 불을 붙인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곧바로 진화돼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혼이 담긴 문화재를 쉽게 보는 건 참담한 일이다. 허술한 관리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문화유산을 모욕하는 건 공동체든 개인이든 스스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허무는 일이다.

박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