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기부"… 울산 최초 아너소사이어티 실버 손응연씨

입력
2023.12.2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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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며느리·손녀도 동참, '기부패밀리'
"이웃 덕분에 번 돈, 돌려주는 것 당연"

“열 살 손녀도 소아암 환자를 위해 머리카락 기부를 하고 있어요. 나눔이 주는 기쁨의 가치를 아는 거죠.”

울산 남구에서 숯불갈비 식당을 운영하는 손응연(59)씨 가족은 소문난 ‘기부 패밀리’다. 학비가 없는 대학생, 배가 고픈 어르신, 수해를 입은 이웃, 움직임이 불편한 장애인 등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2013년부터 손씨가 매달 200만 원씩 사랑의열매에 정기 기부를 시작하면서 아너소사이어티(1억 원 이상 기부)에 가입했고, 2017년 아들 이철호(39)씨와 2021년 며느리 조은정(38)씨가 동참하며 울산 최초 모자(母子)·고부(姑婦) 아너가 됐다. 손씨는 최근 3억 원 이상 초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실버회원 울산 1호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20일 한국일보와 만나 “어린 손녀도 벌써부터 베푸는 걸 즐긴다. 3, 4대까지 계속 나눔의 기쁨을 알면 좋겠다”고 웃었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눈만 마주쳐도 미소가 그려지는, 손씨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러나 과거에 그는 오히려 염세주의자에 가까웠다고 한다. 9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가난하게 자란 탓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어머니를 도와 과자·방직공장 등을 돌며 일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17세 땐 어머니마저 돌아가셨고, 이후 만난 남편과 결혼생활도 평탄치 못했다. 그는 “나만 힘들게 산다는 피해의식에 항상 누군가를 원망했다”고 털어놨다. 생각이 바뀐 계기는 음식 나눔 봉사활동이었다. 1998년 가게에서 나오는 소뼈로 곰국을 끓여 들고 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제대로 씹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이 얼마나 배부른 투정을 해왔는지 반성하게 됐다. 손씨는 “세상에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가진 건 당연하고 못 가진 건 불평하니 불행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며 “건강한 것만 해도 감사하다 여기니 그제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보이더라”고 말했다.

이후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쉬는 날엔 목욕봉사를 다녔다. 매달 1번 이상 노인복지관에 들러 어르신들 식사를 챙겼다. 생일 때마다 지역 대학에 500만 원씩 기부했다. 2012년 울산대 경영학과에 진학했고, 서울 연세대 외식 전문 과정을 수료해 사업에 대한 전문성도 길렀다.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기부하기 위해서였다. 손씨는 이듬해 무거동에 지점을 냈는데 지점 수익 대부분은 기부한다. 사랑의열매 외에 그동안 기부한 금액이 총 얼마냐는 질문에 그는 “세어보지 않아 모른다”며 “좋은 일 한다며 멀리서 일부러 가게를 찾아준 이웃 덕분에 번 돈을 지역사회에 돌려준 것뿐”이라고 겸손해했다.

손씨의 기부에 큰 힘이 된 건 아들 철호씨의 응원이다. 유독 가족에게만 인색한 어머니를 서운해하던 아들은 어느 순간 기부의 기쁨을 깨우쳤고 며느리와 손녀까지 동참하고 있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기부라는 손씨는 “행복은 돈이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며 “모든 사람이 나눔을 통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나눔이고 기부라고 생각해요. 나중에 거창하게 뭘 하기보다 지금 당장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 보세요.”

울산=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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